제임스윌슨 중학교
지난 200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호반 도시 이리에 있는 제임스윌슨 중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바다 건너 그 먼 곳까지 찾아가게 된 이유는 미국의 디자인 교육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지요. 미국은 제가 찾아가기 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중등 교육과정에서 디자인 교육의 비중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1]. 그 때문인지 제임스윌슨 중학교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디자인 교육 시스템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지요.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학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디자인 센터에는 아이들이 센터다양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작업실 여러 개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각종 목재를 다룰 수 있는 원형 톱, 직소[2], 띠톱[3], 라우터[4]와 같은 대형 기계는 물론이고 금속을 다룰 수 있는 선반과 밀링머신까지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플라스틱을 가공하는 데 쓰이는 컴퓨터 장비와 커팅을 할 수 있는 캠 장비, 레이저 커팅 시스템도 갖추고 있더군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장비가 생색을 내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아이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디자인 도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디자인 교육과정도 훌륭했습니다. 조형, 구조, 기능, 시스템 등을 고려한 물건을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실험하며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원리와 아이디어가 적용된 디자인 제품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고안하고 만들어 낸,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생활용품을 직접 사용하면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둘러보며 연신 입을 다물 줄 몰랐던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외우고 시험을 잘 보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진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는 교육을 하는구나!’
우리나라에도 ‘시범학교’라고 불리는 특별한 교육 목적을 가진 학교에는 다른 학교에 없는 시설이나 장비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잖아요? 처음에 저는 제임스윌슨 중학교도 일종의 시범학교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임스윌슨 중학교 인근의 다른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하나같이 아이들이 다양한 것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 센터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일찍부터 여러 가지 물건을 스스로 만들며 구상과 고안, 설계, 제작, 실험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했던 저에게 이런 공간과 장비, 그리고 기회가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제가 꿈꾸어 온 ‘디자인 교실’의 이상향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교 건물에 적용된 디자인 사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임스윌슨 중학교는 지은 지 수십 년 된 학교 건물을 새롭게 고치고 있었는데, 그 과정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이 학교는 건물을 에너지 절약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고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서 ‘환경을 고려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건축가와 디자이너, 환경 전문가, 학교 운영자, 교사, 지역 주민, 학생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약 1년 동안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오래된 학교 건물은 이렇게 해서 새롭16게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서둘러 새로 짓는 것이 편리하고 실속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마을의 어른들은 조금 더디고 느리게 가더라도 학교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이 더 큰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이제 학교 건물은 햇빛, 빗물, 지열 등을 에너지자원으로 활용하는 친환경 건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단층으로 지은 학교 건물의 지붕과 천장에는 확산판 역할을 하는 반투명 유리와 천창을 달았습니다. 햇빛의 직사광선이 부드럽게 퍼지면서 스며들도록 만들어 채광 효과를 높이면서도 눈이 부시지 않도록 설계한 거지요. 교실뿐만 아니라 복도, 체육관, 도서관, 교사 휴게실 등 빛을 필요로 하는 모든 공간을 천창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이 환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보조 에너지인 전기로 불을 밝히는 경우는 햇빛이 약한 흐린 날이나 밤뿐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몸은 전기로 만들어 내는 빛보다 자연광에 더 익숙하므로 아이들 시력에도 더 좋겠지요? 그리고 화장실에서는 천장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하여 그 에너지로 물을 데우고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이 학교는 태양에너지를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적용되어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공간 역시 효율적인 디자인이 돋보였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교실을 하나의 ‘팟 Pod’으로 설계하였는데, 그 중심에는 컴퓨터실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용 교실로 두고 교과 교실이 ‘ㄷ’ 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실 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서 교과 수업 중이더라도 학생들은 자료를 찾기 위해 자유롭게 중앙의 컴퓨터실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요. 물론 교사는 그런 학생들을 교실에서 모니터 할 수 있고요.
언어, 수학, 과학, 역사 등의 핵심 교과 수업은 팟의 교과 교실에서 진행하고, 핵심 교과가 아닌 미술, 음악, 체육 등은 학년별로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어 별도의 공간에서 수업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제임스윌슨 중학교를 비롯하여 그때 제가 둘러보았던 학교들이 디자인 전문학교냐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학교의 아이들도 우리처럼 언어를 공부하고 수학을 익히며, 과학과 사회 과목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학교가 아이들 스스로 창의적인 공간에서 자신만의 디자인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설비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학교들은 이렇게 디자인 교육에 커다란 노력을 기울이고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일까요? 비록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가르치지는 않더라도 학생들이 모두 디자이너로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일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이번에는 미국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청소년 디자인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영국으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1] 미국은 1989년부터 미국 산업디자인협회(IDSA), 예술진흥원, 필라델피아 교육 후원회가 협력하여 K-12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2] 직소: 곡선 모양으로 목재를 자를 때 사용하는 전기톱을 말한다.
[3] 띠톱: 띠 모양의 톱날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금속이나 목재 등을 절단하는 기계를 말한다.
[4] 라우터: 목재의 홈과 연결 부위를 갈기 위해 회전하는 비트를 사용하는 전동 기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