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앞두고
연수에 참여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온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누구는
교사였고,
누구는 행정가였고,
누구는 연구자였고,
누구는 현장에서
묵묵히 시간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퇴직 이후에도
이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 연수의 시간은
마지막 정리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연결에
가까웠다.
퇴직 이후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누구는
여행을 다녔고,
누구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자격증을 따는 사람도 있었고,
한 달 살이를 반복하며
삶의 리듬을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제주로 이주해
제주도민이 된 친구도 있다.
그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자기 삶의 조건을
다시 고른 결과였다.
이렇게
같은 출발선에 섰던 사람들은
각자의 여건대로,
각자의 희망대로
다른 꼴의 시니어가 되어갔다.
이때
관계는
더 이상 직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함께 무엇을 하느냐가
관계를 만든다.
활동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난다.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
비슷한 리듬을 가진 사람과
다시 연결된다.
나 역시
퇴직 다음 날
연구소를 개원했다.
직을 내려놓았지만,
일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나는
직을 떠나
나의 업으로 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선택이
빠르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래 준비해온
자연스러운 이동이었다.
이후의 관계는
이전과 달랐다.
상하도 없고,
소속도 없다.
대신
관심과 주제,
지속 가능한 활동이
사람을 연결했다.
활동이 있는 관계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해왔는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대화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시니어의 관계는
점점
다양해진다.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여러 개의 꼴로 나뉜다.
여행하는 시니어,
공부하는 시니어,
이주한 시니어,
일을 다시 설계한 시니어.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조건에 맞춘
삶의 형태다.
활동은
관계를 만들고,
관계는
삶을 확장한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관계를 잃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렇게 선택한 활동과 관계 속에서
시니어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방식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지를
이야기하게 된다.
Photo by Alexander G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