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직이 끝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일이 끝나는 순간은 아니다.
직은
조직 안에서 맡았던 자리이고,
업은
조직 밖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나의 일이다.
퇴직 다음 날
나는 연구소를 개원했다.
하루의 공백도 두지 않았다.
이건
조급함 때문이 아니라,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직을 내려놓았을 뿐,
나의 업을
버린 적은 없다.
30년 동안
가르치며 쌓아온 것은
직무 경험만이 아니었다.
사고의 방식,
사람을 보는 눈,
형태를 해석하는 감각.
이것들은
퇴직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업은
명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직함이 없어져도
계속 남아 있는 것,
그게 업이다.
누군가는
퇴직 후에
업을 찾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이미 가지고 있던 업을
그제야
전면에 내놓는다.
나에게
연구소 개원은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
정리된 선택에 가까웠다.
이제는
조직의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일을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업으로 산다는 것은
안정적이라는 뜻도 아니고,
늘 바쁘다는 뜻도 아니다.
대신
선택의 기준이
분명해진다.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어떤 일은 받아들이고,
어떤 일은 거절한다.
이 선택이 가능해지는 건
경험이 충분히 쌓였기 때문이다.
시니어가 되어서야
가능해지는 자유다.
직으로 살 때는
역할이 나를 규정했다.
업으로 살기 시작하면
내가 역할을 고른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업은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확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지속 가능하면 된다.
그래서
시니어의 업은
작을 수 있고,
느릴 수 있고,
아주 개인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다듬어진
정확함이 있다.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쓸모를 잃는 일이 아니다.
쓸모를
다시 정의하는 일에 가깝다.
업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 다시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장은
성공 이야기가 아니다.
퇴직 이후에도
자기 삶의 중심을
놓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선택에 대한 기록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 업의 삶이
경제와 생활,
그리고 지속성이라는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야기하게 된다.
사진 : 학생들과 벽화 그리기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