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벨로 자전거로 퇴근하기
팬데믹이 끝나고 다시 출근을 시작하면서 나는 접이식 자전거를 가지고 다녔다. 아침에는 자전거를 접어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퇴근할 때는 자전거를 펴서 집으로 돌아왔다. 거리는 약 25킬로미터였다. 지금은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때는 오래 걸렸다. 몸에 아직 그 거리의 꼴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릴 생각은 없었다. 힘들면 쉬고, 다시 가는 식으로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물과 간식을 챙겼고, 벤치가 보이면 앉았다가 숨이 가라앉으면 다시 자전거를 탔다. 지금은 그런 방식을 ‘보급’이라고 부른다는 걸 안다. 당시에는 그저 쉬어가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쉬고, 다시 타고, 또 쉬면서 길은 조금씩 이어졌다.
사실 자전거를 탄 이유가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던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주말마다 10킬로미터를 걸었고, 오를 때는 고도 800미터 안팎을 2년 가까이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왔다. 주치의는 분명하게 말했다. 걷지 말고, 오르지 말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도 자전거는 무릎에 큰 부담이 가지 않으니, 자전거를 타보라고. 그래서 타기 시작한 것이다.
동네로 접어드는 마지막 구간에는 늘 가장 높은 언덕이 있었다. 나중에야 그곳이 업힐 구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영화에 클라이맥스가 있듯, 그 언덕은 퇴근길의 마지막 난코스였다. 그곳을 오를 즈음이면 반대편 서쪽 하늘로 노을이 졌다. 하루의 끝이 가장 힘이 모이는 지점에서 조용히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그 언덕을 넘으면 마지막 동네로 들어섰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낮으막한 산이 있는 언덕을 하나 더 넘어야 했다. 그때는 그 짧은 오르막조차 마지막 힘을 끌어내야 했다. 지금은 더 이상 힘들게 느껴지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언덕이 하루의 끝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석양을 봤다. 오던 길을 뒤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거리만큼 노을이 펼쳐져 있었다. 그 시간에는 생각이 많아지지 않았다. 잘 해냈는지, 버텼는지 같은 질문도 떠오르지 않았다. 숨이 가라앉고 몸의 열이 식는 것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잠깐의 정지가 하루를 정리해 주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면 길은 한결 가벼워졌다. 남은 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비워진 상태였다. 페달을 밟는 리듬이 일정해지면 말들이 사라졌고, 대신 몸의 감각이 또렷해졌다. 타는 일은 걷기와 오르기 사이에 놓인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빠르지만 서두르지 않고, 멀리 가지만 급하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계획된 훈련도, 의도된 도전도 아니었다. 다만 계속 탔고, 쉬었고, 다시 탔다. 그러는 사이 몸에는 그 거리의 꼴이 만들어졌고, 마음에는 버틸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상실을 견디는 방법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다. 타고 다니는 동안, 몸이 먼저 기억해 주었다.
그런 이유인지 나는 노을이 좋다. 떠오르는 해는 잠깐의 찰나로 지나가지만, 노을은 하루의 끝에서 긴 시간을 내어준다. 급하게 사라지지 않고, 서서히 물러나며 머무를 여유를 남긴다. 자전거를 세우고 바라보던 그 석양처럼, 노을은 나에게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지나온 길을 돌아볼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