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바람, 그리고 나의 리듬을 맞추는 일
한 행사에서 후배 이 선생을 만났다. 팬데믹 이후 퇴근길에 자전거로 25킬로미터를 달린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는 잠시 듣더니 국토종주도 가능하겠다고 했다. 그 말은 응원이라기보다 판단에 가까웠다. 몸이 이미 어느 정도의 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처럼 들렸다. 돌아오는 길에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국토종주 신청을 하자 스탬프 수첩과 코스 안내 자료가 도착했다. 지도는 단순한 선이 아니라 ‘이동 방식’을 묻는 질문지에 가까웠다. 어디서 출발해 어떤 지형을 지나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구성해야 하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선생은 다녀온 사람답게 엑셀 자료도 보내줬다. 출발 시간, 이동 구간, 보급(간식, 식사) 지점, 버스를 타는 위치까지 정리된 계획표였다. 하지만 그의 루틴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었다. 나의 컨디션, 나의 속도, 나의 생활 리듬은 달랐다. 그래서 그 자료가 내 라이딩의 기준이 되었다.
본격적인 준비는 그다음이었다.
지도, 종주 수첩, 카카오맵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놓고 봐야만 하루의 동선이 보였다. 지도는 큰 구조를, 수첩은 반드시 지나야 할 인증센터를, 카카오맵은 자전거로 길을 보여줬다. 붉은 선은 자전거 전용도로, 푸른 선은 자동차 도로였다. 어느 구간이 편하고 어느 구간이 위험한지는 색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시간표가 더해졌다. KTX, 고속버스터미널, 시외버스터미널의 출발 시간을 모두 맞춰야 했다. 자전거를 접고 역까지 이동하는 시간, 환승 시간, 대기 시간을 계산해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야 했다. 맞지 않는 날은 새벽에 터미널이나 용산역까지 자녀에게 부탁해 이동해야 했다. 국토종주는 혼자 달리는 일이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이 포함된 여정이었다.
날씨는 또 다른 변수였다.
준비가 아무리 완벽해도 비가 오면 일정을 취소해야 했고, 적은 비에는 강행할지 고민해야 했다. 바람도 중요했다. 순풍이면 가벼웠고, 역풍이면 같은 힘으로도 속도가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바람의 방향 하나가 하루의 형태를 바꾸었다.
그중에서도 새재 자전거길은 국토종주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구간이었다.
총 100km.
표시된 고도는 총 상승 979m, 총 하강 1,000m.
지도에는 봉우리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경새재의 첫 고개, 소조령의 2km 넘는 업힐, 이화령의 5km 업힐이 한 줄로 이어져 있다.
거리로는 전체의 10%가 채 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하루 체력의 4분의 1을 가져가는 구간이었다.
업힐이 끝나면 편해질 줄 알았지만, 다운힐은 쉬움이 아니라 또 다른 긴장이었다.
속도가 붙으면 작은 돌도 위험이 되었고, 바람의 압력이 핸들을 흔들었다.
지형과 바람, 경사와 리듬의 조합이 하루 국토 종주의 성격을 결정했다.
새재 자전거길 100km의 공식 가이드 시간은 6시간 40분,
카카오맵은 9시간 41분을 제시한다.
하지만 나는 시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완주하는 일이다.
같은 100km라도 바람의 방향, 업힐에서의 호흡, 다운힐의 긴장에 따라
누구에게는 10시간이 걸리고, 누구에게는 6시간 대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기준 삼지 않는다.
국토종주는 기록의 경쟁이 아니라,
그날의 몸과 자연이 허락하는 리듬으로 끝까지 도착하는 법을 배우는 길이다.
페달을 밟기 전, 이미 가장 복잡한 여정은 끝나 있었다.
라이딩은 그 준비의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