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풀 Jan 12. 2023

지긋지긋한 K장녀 증후군

사랑보다 깊은 오지랖

네가 이거 보면 좋아할 줄 알았지.
이제 너도 엄마가 되었으니까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싫음 말아라, 얘.


화가 밀려왔다. 엄마의 실망한 눈빛과 함께 황금빛 보자기는 불쏘시개가 되어 활활 타올랐다. 입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그때 엄마가 삼킨 말이 무언지 알 것만 같다. 이 말을 할 때마다 엄마는 그 눈빛과 표정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났다 기지배야. 애 낳아 키우는 것도 그렇게 너 잘난 맛에 할 수 있을 것 같냐? 흥. 넌 내 도움 없이는 제대로 키울 수 없을 거야.'


잘났다 기지배야, 라는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적응이 어렵다. 엄마는 내가 뭔가를 이루어낼 때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 주변인에게 알리는 동시에, 정작 무언가를 계속 이루어나가는 나의 '잘난 척'이나 '지적질'엔 '잘났다, 기지배야.'라는 말로 날 죄인으로 만들었다. 본인이 이루지 못한 걸 딸이 해내어 기쁜 동시에, 정작 그 딸이 자신을 가르치려 들면 기분이 상하는, 어디선가 접해 본 심리학적 현상인 것 같기도 했다.


폐품 같은 당신의 육아일기와 안타까운 어린 내가 쓴 일기가 출산 선물이라고? 예민한 네 아들과 달리 당신의 딸인 나는 떼도 안 부리고 순하기만 해서 참 예뻤다는 (억울한) 일화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데요?! 반성할 일 없던 평범한 날에도 반성할 거리를 억지로 찾아 적은 일기장을 보고선 어떤 감회를 느끼란 건가요? 잠도 못 자고 경력은 단절된 채 안과 밖이 엉망인, 막 엄마가 된 딸에게 말입니다!


사람은, 중년의 나이가 된 엄마는, 쨌든 변하지 않는다. 나는 모르고 당신만 알아도 좋을 그 이야기들이 양대창 곱처럼 그득그득한 그 보따리를, 오로지 전지적 자신 관점에서 감동에 젖어 기어코 들고 온 것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를 숨을 헉헉대면서.


가끔 이유도 없이 슬퍼지고 잘 지내다가도 한번 뻥 터지면 왜 눈물을 그칠 수 없는지, 양수기를 끌어다 억지로 퍼내는 것처럼 울고 나야 그나마 속이 풀리는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토록 쉽게 기가 빨리는지, 남자 어른 앞에선 잘못한 것 없어도 주눅 드는지……. 빛바랜 일기장 속엔 내가 어떤 과정으로 K장녀의 자격에 매우 적합한 인간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증거가 빼곡했다. 보기 싫었다. 다시 보자기에 싸서 보이지 않는 옷장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엄마의 육아 일기는 다시 돌려보냈다. 그 후로 영문도 모른 채 화가 나는 일이 잦았다. 어디 한번 나를 건드려 봐, 틈만 나면 이를 앙다물었다. 엄마가 오는 날이면 싸움판이 벌어졌다.


K장녀에 내면 아이라니, 지긋지긋하다. 지금도 책상 위에는 엄마와 딸의 애증 관계에 대한 심리서가 수두룩하다. 기어코 써내야 나답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프로젝트를 벌이고 앉아서 꾸역꾸역 쓰고 있다. 불쾌하게 끈적이는 'K장녀'의 내력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자라서 겨우 내가 되지 말고, 기어이 네가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 김애란 소설 <비행운> 중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를 토대로 인용

가득 찬 안갯속 아이, 광평리


엄마는 종종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기 싫은 장기자랑을 등 떠밀고(말 잘 듣는 장녀는 성실히 해내는 게 문제), 학년이 바뀔 때면 학부모 상담에 자식의 유일한 단점이 내성적인 성격이라며 그걸 잘 고쳐주십사 공손히 부탁을 했다(덕분에 차분히 준비해 반장 선거에 나가고 싶던 마음은 후닥닥 접게 되었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와 나누는 게 나름 좋았던 때도 있는 것 같은데, 오래가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교회 다니는 친구들만 불러서 기도를 했다(이해는 안 가지만 그때만 해도 선생님의 언행은 곧 법도와 같았기에, whatever). 그 얘길 하면서 '우리는 왜 교회 안 다녀?'라고 별 뜻 없이 물었던 게 '모성애+오지랖' 버튼을 눌렀다. 엄마는 꼬리곰탕(그 안에 봉투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을 사들고 선생님 집으로 찾아가 뭐라 긴 말을 전하고 나서야 평정심을 되찾았다. '봐라, 엄마가 이렇게 해주니 네가 이제 편안하지?'라는 표정으로 그제야 안심하며 나를 학교에 보냈다. 엄마는 본인이 없는 상황에서 자녀가 겪은 아주 단순한 일을 듣는 것에 불안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예민한 나는 그걸 잘 알아챘고, 엄마는 뭐라도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본인이 해결을 해줘야 직성이 풀렸기에 엄마는 후련해했고, 나는 곤란해졌다.


'배려 섞인 오지랖'이 소나기처럼 우두두 쏟아진 뒤로는 시시콜콜 일과를 얘기하는 게 더는 편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긴장했던 감각을 풀어놓고 싶었지만, 엄마의 불안한 눈빛을 보면 어깨가 더 굳어졌다.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에 엄마가 또 무슨 짓을 저질러 버릴까 봐 두려웠다. 사소한 것도 감추고, 힘든 게 있어도 아무 일 없는 척 연기하는 날이 늘기 시작했다.


그런 내가 너무한가도 싶었지만, 동생 대학 졸업식 때 내 선택은 나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미취업 상태인 남동생의 상태가 엄마의 불안 버튼을 강하게 눌러댔다. 엄마는 군대도 다녀온 아저씨 나이가 된 아들의 취업자리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러 대학 교수실에 다녀왔다. 온 식구가 뜯어말렸지만 엄마는 해냈다. 교수님이 취업자리를 알아봐 줬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지만, 엄마는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어려운 프로젝트를 따낸 영업사원처럼 자랑스럽고 진취적인 표정을 지었다. 


취업과 결혼이라는 K장녀의 의무를 척척 해낸 후에도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당시 3년 차 직장인이었던 나는 영혼이 먼지처럼 부서지는 경험을 한 뒤 마침내 퇴사에 이르렀지만, 같은 동네 사는 엄마에겐 다음 직업을 찾을 때까진 당연히 비밀에 부쳤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는 이유로 엄마는 휴대전화가 아닌 회사에 전화를 해 나를 찾았고, 믿었던 장녀의 퇴사를 그렇게 알아내고야 말았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어떻게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회사를 그만둬!


결혼한 지 2년이 넘은 배우자가 있는 몸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이내 학교에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 같은 마음이 되었다. 하지 않아도 될 거짓말과 죄책감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는 걸 안다. 이 또한 엄마라는 좋은 사람이 지닌 하나의 단점이라 생각하며 나를 타이르곤 했다. 부모가 가진 결핍은 자식에게 과잉으로 나타난다는 말도 새겨 넣었다. 자식에게 무언가를 해주고야 마는 방식은 엄마에겐 가장 적극적인 사랑 표현법이었을 테다.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빈자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금세 눈에 물이 고였으니까. 정신적으로 독립하기 전에 모든 게 끝나버렸으니까.




내 어릴 적 별명은 ‘똥글이’였다. 얼굴도 똥글, 눈도 똥글, 코도 똥글, 입도 똥글인데 무엇보다 이마가 동그랗고 이뻐서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지금도 엄마 아빠는 나를 '똥글아'라고 부르고, 눈에 자글자글 주름이 잡힌 나이에 접어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응’이라 대답한다.

    

일기장이 들어있던 보자기 속엔 내 결혼사진도 있었다. 어쩌다 거기 들어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평소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사는 엄마(모든 것엔 추억이 깃들어있어 버릴 건 아무것도 없다는 주의)이기에 이상할 건 없었다. 엄마는 사진을 훑으며 그날 자신의 머리와 메이크업이 너무나 마음에 안 들었다며 백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를 당연하게 또 했다. 이마가 좁아서 가려야 하는데 이렇게 올려버리면 어쩌냐고, 미용사 흉을 보다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마 이야기로 흘렀다. 똑같은 레퍼토리지만 나는 잠자코 들었다.


이마가 좁아 부모 복이 없나 봐. 엄마,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그렁).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고. 봐라, 똥글아. 너는 이마가 이렇게 똥그랗고 예쁘니 부모 잘 만난 거 아니겠니. 네 아들도 봐라. 이마가 아주 훤하다, 야. 얘는 부모 복도 많고, 할미 하부지 복도 많아서 그런 거다.


낮잠 재우며 뭐라도 해보려던 시간, 제주도립미술관


거울에 비친 이마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잘해보고 싶었지만    이야기들로 삶의 추가 움직이고 있는  느낀다마땅한 기분이다.


같은 비누를 번갈아 쓰면서
우리가 점점 작아질 때     
원인 모를 내 두통과
너의 환멸이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다고

강지혜, <유성> 중

물풀의 세 번째 글.

작가의 이전글 친정엄마가 불편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