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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풀 Jan 12. 2023

근사한 우리 가족

길 잃은 엄마 양의 집은 어디인가

엄마(양)


왜냐하면 우리 엄마가

나를 안아줄 때 양털처럼

폭신하고, 우리 엄마는,

양이 풀을 여유롭게 뜯어

먹는 것처럼 어쩔 때

여유롭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

는 양띠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시집 ‘근사한 우리 가족’ 중 발췌>




바다 위를 지나가는 양떼구름


아이는 나를 '양양이'라 부른다. 양띠라 그렇지 특별한 뜻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름의 근거 있는 이유가 있었나 보다. 

 

나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 비밀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형이다. 그들을 보통 물건으로 보지 않고 살아 있는 친구처럼 대했다던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 제법 큰 사춘기 소녀가 되어도 철 들 만한 성인의 나이가 되어도 여전했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인형 하나 버렸다가 큰 난리를 한번 치렀던 부모님은 큰 딸이 결혼을 하고 고국을 떠났다가 아이를 낳고 다시 돌아와 집을 장만하게 될 때까지도 그들을 처분하지 못했다. 친정에 얹혀살다 새 집으로 이사 가기 전 날, 부모님의 집 현관 앞에는 두 팔 벌려 안아도 들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의문의 꾸러미가 우리와 함께 집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시집가는 딸에게 들려 보낼 이불 몇 채라도 되는 듯 꾸역꾸역 담긴 푹신한 물체가 비닐에 싸여 끈으로 촘촘히 묶여 있었다. 틀림없는 아빠 솜씨다.

‘이제 와서 이걸 어쩌라고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키고 몰래 한숨으로 보냈다. 집 떠나고 십 년이 다 되어 가도록 찾아가지 않은 짐을 맡아준 분들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고스란히 받아올 수밖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잠시 잊고 있던 내 유별남의 증거를 이제 와서 내칠 수는 없어 여태 등에 이고 지고 다닌다. 남편에게는 눈에 가시인 이 짐은 갈 곳 없는 와중에 딸의 방 한 켠을 차지했다. 많이 낡고 꼬질꼬질한 녀석들을 은닉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또다시 이사를 했고, 아이는 어엿한 초등학생이다. 이제는 내 낡은 보따리와 함께 아이의 인형 보따리 마저 갈 곳이 없어 다 같이 창고 신세가 되었다. 침대 위에는 아이가 안고 자는, 가끔은 내가 책이나 핸드폰을 볼 때 몰래 깔고 눕는 뚱뚱한 고양이 인형 하나만 허락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려고 눕는데 낯익은 작은 인형 하나가 머리맡에 서 있다. 

 

삼촌이 스위스에서 사 오신 진짜 양털로 만들어졌다는 아기 양 인형. 가만히 몸통을 기울이면 ‘메에에에에’하고 울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형들이 워낙 많은지라 (다른 인형들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어도 가장 예뻐하고 애지중지하던 ‘메’이다. 내 아이보다 나이가 두 배 아니 세배는 많아지도록 세월을 버텼다. 하얗게 몽글거렸던 털은 잿빛으로 뭉개지고 아무리 흔들어도 ‘꺽꺽’하고 마찰음만 낼 줄 아는 게 안쓰럽다. 

 

물어보지 않아도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있다.   

다만 왜 굳이 3층 창고까지 올라가 구석에 쳐 박힌 짐꾸러미를 뒤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건 또다시 이사를 하고 그 어떤 짐짝에 꽁꽁 숨겨 놓아도 그 누구가 기어코 찾아내어 내 머리맡에 다시 가져다 놓을 것이라는 거다.

 

도대체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니
엄마의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 거니

 

  


 


16년 전.

 

Do you know where you’re goin’?
Do. You. Know… Where. Are. You. Going?

 

앞 좌석에 앉은 덩치 큰 아주머니가 뒤돌아 소리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서 정신 차리라고 뺨을 세차게 갈기는 것 같다

나를 구해주는 싸대기

얼얼한데 따뜻한 온기가 감싸주는 느낌이 묘하다

 

런던의 빨간 이층 버스 구석에 앉아 엉엉 울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다 큰 어른인데 엄마 잃은 아이처럼 눈물일랑 콧물일랑 숨길 것 없이 그냥 나오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때는 정말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었다. 차오르는 눈물에 버스 번호도 안 보이고 행선지 안내방송도 들리지 않았다. 꿈을 찾겠다고 직장이며 가족에 연인마저 다 내팽개치고 떠나 온 곳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도 사랑도 잃을 것 같았다. 괜한 객기를 부린 것 같아 덜컥 겁이 났다. 그렇지만 그쯤에서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저지른 일이 많았다. 중도에 수습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꿈에서 깨우려는 듯 호통치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눈물을 훔쳤다. 도대체 어디에 와 있는 건지 버스에는 왜 앉아있는 건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땡큐 땡큐 얼버무리고는 버스에서 후다닥 뛰어내렸다. 해가 짧은 유럽의 겨울 오후, 하늘은 이미 어둑해졌고 가랑비가 언제나처럼 부슬거렸다. 조명도 켜지지 않은 어스름한 광장의 사자상을 지나 그리스 신전 같은 웅장한 기둥을 건너 보폭보다 높은 계단을 올랐다. 궁전 같은 거대한 중앙 현관 안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불을 쫓는 나방처럼 빛을 향해 무작정 직진했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 들어간 그곳은 미술관이었다. 또각또각 대리석 바닥의 울림을 들으며 안으로 안으로 걸어가다 멈춘 곳은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앞이었다. 그 그림이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내딛던 발길을 붙잡은 것인지, 비로소 발걸음이 멈춘 곳에 걸려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눈물이 가득 차서 모든 것이 비가 퍼붓는 창가로 내다본 바깥 풍경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드디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시야가 밝아졌다. 그렇게 처음 실제 두 눈으로 영접한 해바라기 그림은 마치 살아있는 태양의 홍염처럼 내 눈앞에서 이글거렸다. 그때 나는 미술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실물로 처음 본 시들시들한 진짜 해바라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영상은 객관적 3인칭 시점이 되었다. 아마도 버스는 종점을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버스에는 아주머니와 나 둘만 남아 있었고 버스기사 아저씨가 말을 걸었던 것 같다. 감정에 도취되어 대답도 없이 줄줄 울고 있었을 나를 보다 못한 앞 좌석의 아주머니가 말을 전달해 줬을 것이다. 나는 그저 길을 몰라 어쩔 줄 몰라하는 동양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동안 기억 속 그 아주머니는 나의 길을 인도해 준 안내자였다. 나를 그 해바라기 그림으로 보내준 운명의 인도자였다. 착각이었을지라도 스스로 만들어 낸 판타지였을지라도 길 잃은 나의 마음을 이끈 것은 호되지만 자상한 그 목소리였다. 감정의 늪에 빠져 울던 나를 깨운 그 목소리의 주인은 등 뒤에서 후광이 은은하게 비추는 하늘에서 내려온 수호천사임이 틀림없다.





미오의 다섯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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