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늘만 살아.
삐비 비빅 삐비 비빅 알람이 울린다. 25분이 지났다. 딱 알맞게 식은 커피를 세 모금밖에 마시지 못했는데...... 아쉽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남은 커피는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 모서리에 선 채로 원샷을 한다.
오늘 주어진 점심시간은 25분. 내가 나에게 준 시간이다. 출근 전 오전 시간을 쪼개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런 모습이 누구보다 내가 낯설지만 ‘열심히 살고 있구나.’ 셀프 쓰담쓰담을 해준다.
몇 년 동안 본업이 끝나고도 저녁 시간에 학습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습지는 과목을 분 단위로 계산하여 수업한다. 하루에 많으면 열 가정을 방문하고 열 명의 친구들과 열 명의 학부모님을 만났다. 아이들과 조금 더 이야기하고 조금 더 봐주다 보면 다른 친구 집에 가는 게 항상 늦었다. 다른 수업에 늦는 것도 문제였지만 헐레벌떡 집에 들어가면 잠이 많은 둘째가 종종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졸린 눈일지라도 잠들기 전 보는 모습이 티브이나 핸드폰 화면이 아닌 엄마 모습이길 바랬다. 그때부터 오 분이라도 일찍 집에 가기 위해 학교 종처럼 수업 시간 알람을 맞췄다. 해야 할 일이 많을 때는 알람을 맞춰놓으면 완벽하게 끝내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일을 끝낼 수가 있었다.
올해 카드 재발급 신청만 네 번. 한 번은 아이스크림 무인 매장에 그냥 꽂아 두고 와 다른 이가 카드를 쓰기도 했는데 도난 신고를 늦게 해서 두 번이나 더 도용당하고, 물건도 잘 떨어트려 예전에 남편은 아예 칼질을 금지했었다. 글루건에 손을 데는 것은 일도 아니며, 첫째는 엄마가 뛰는 모습을 태어나 한 번 봤다고 할 정도로 덜렁이 느림보가 내 아이들과 함께 우리만의 둥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발버둥을 치고 있다.
"전 정말 괜찮습니다. 선생님. 아이가 원하는 학교로 보내겠습니다."
큰아이 담임 선생님이 고등학교 원서 마감일에 전화가 왔다.
“어머님~~ 오늘이 원서 마감일인 거 아시죠. ㅇㅇ 성적이면 충분히 다른 학교 가도 되는데 지금이라도 변경할까요??”
“괜찮습니다. 선생님 아이가 친구들이랑 같이 그 학교 간다고 하고요. 다른 학교 가서 너무 공부하면 숨 막힐 것 같다고(웃음) 해서요.”
이곳의 엄마들은 아직도 교복 색을 보며 아이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시며 선생님은 학교 변경을 조심스럽게 권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여섯일곱 번을 답했고 저희 아이가 밥 잘 먹고, 화장실 잘 가고,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전했다. 선생님은 의아해하셨다.
진심이었다. 아이들이 밥 먹고, 화장실 잘 가고, 잠만 잘 자는 일상적인 생활에 감사하다. 선생님은 어머님 같은 분들만 계시면 좋겠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전화를 끊고 원인 모를 울음이 터져 나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주 사는 게 뭘까 하는 종종 의문을 품곤 한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 주는 게 아니란 것을 일찍 깨닫고 정말 그날 하루만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일용직이야 오늘 일하고 오늘 먹고 오늘만 살아. 인생에서의 일용직”이라고 가끔 이야기하면 딸은 웃는다. 나의 삶을 옆에서 고스란히 보고 자란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가 되었다. 누구보다 딸과 이야기하며 노는 시간이 가장 편하고 즐겁다.
아침에 집을 나선 사람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가족 모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게 기적이란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장 가깝다고 느낀 사람의 ‘갔다 올게’란 흔한 인사말이 다시는 들을 수 없어 평생 가슴에 남는 귀한 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만 그 어떤 것보다 무사히 학교를 다녀와서 같이 따뜻한 밥을 먹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
오늘도 감사하다.
(행여 자식에게 욕심이 생기게 될 때면 이 글을 꺼내 봐야지).
삐비 비빅 삐비 비빅 알람 소리에 잠이 깨고 눈을 뜨자마자 계란 요리를 한다. 얼마 전까지는 삶은 계란이었는데 둘째가 삶은 계란이 싫다고 해서 요즘에는 스크램블 에그로 준비한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면 퍽퍽한 식감과 간을 하지 않은 요리를 좋아하는 첫째는 계란만 넣어 만들고, 간도 적당히 있어야 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둘째는 우유를 넣고 소금과 설탕도 조금씩 넣는다. 포인트는 젓가락을 움직여야 할 타이밍인데 처음부터 마구 저어 대면 부서지기만 할 뿐 좋은 식감을 얻지 못한다. 조금 익을 때를 기다렸다가 가운데 자리에 있는 계란이 살짝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작하면 가장자리에 있는 계란들은 안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억지로 끌어오지 말고 꼬시듯이 살짝살짝 젓가락질을 해줘야 (마치 아이들을 달랠 때처럼) 몽글몽글 뭉쳐지며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다. 어젯밤 깨끗하게 씻어둔 사과는 세로로 얇고 길게 썬다. 마음 같아서는 토끼 모양도 해주고 싶지만, 손을 쓰며 입에 풀칠을 하는 사람인지라 손을 보호해 주는 편을 택한다. 대신 색이 다른 과일도 하나 더 곁들여 보기 좋게 꾸며주는 일은 잊지 않는다. 기분 좋은 아침이 될 수 있도록.
그러고 나서 너희들을 깨우러 간다.
당연한 것들이 모여 일상을 이루고 그 당연함이 삶의 가장 소중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일어나자는 엄마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뒤척뒤척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볼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과 그 이름에 반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번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당연하게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너희를 깨우고, 과일을 깎으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묵묵하고도 성실하게 일상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서툰 엄마가 너희에게 전하는 사랑이다.
하다의 네 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