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주인공이 되다.
다정한 말과 눈빛, '너 주려고 산거야'라는 말과 함께 냉장고에 있던 음식을 풍족하게 내어주는 너그러움, 그리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엄마의 품......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 한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과 말들은 모두 어릴 적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것들이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나는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제목은 ‘좋은 엄마’.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평범한 날들을 보낸다. 매일 싸우다가 좋았다가 지지고 볶는 보통의 가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버렸고, 미친 여자처럼 그 사람 무덤만 찾아가다 우연히 삼촌을 만난다. 삼촌은 주인공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소리 지른다.
"아이들 두고 어디 가려고? 고아 만들고 싶어? 너까지 없으면 아이들 고아돼!"
주인공은 그 날이후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엄마로만 살아간다. '고아'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그녀는 방황을 멈춘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상의 나날을 보낸다. 졸린 눈을 비비며 건강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잔소리는 빨래를 세탁기 안에 집에 넣으며 그 빨래와 함께 돌려 버리고 '엄마!' 하고 부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후다닥 반응한다. 깔깔깔 웃으며 쇼핑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재미있는 영화가 개봉하면 손잡고 영화관을 찾는 일상이 흘러간다. 가끔 좋은 엄마의 짐이 무거울 때면 혼자 숲을 걸으며 가슴이 터져 없어질 것처럼 숨을 크게 쉬고, 차 안에서 목청껏 소리도 지르고, 고음 불가지만 좋아하는 락을 따라 부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이들은 자라고 또 자라 그들이 만든 가족들과 또 다른 울타리에서 생활하고 주인공은 학교 앞 문방구를 하며 그림책을 쓰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었다. 가끔 손자 손녀가 찾아오면 달콤한 사탕을 입에 넣어주고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읽어 주는. 감기에 걸려 저번주에 오지 못한 소자 손녀가 놀러왔다. 아이들은 입에 사탕을 오물오물 거리며 자기들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작은 손에 색연필을 쥔다.
연필과 지우개가 놓인 테이블 넘어로 좋은 엄마의 아들과 딸이 미소 띤 얼굴로 지켜보며 연극의 막이 내린다.
어른들이 그랬다. 아이들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제일 듣기 싫었던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이들 때문이 아닌 아이들 덕분에 살고 있다. 좋아하는 걸 쫓았던 소녀는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엄마가 되었다. 멋진 예술가가 될 줄 알았지만 스크램블을 멋지게 만드는 다정한 엄마가 되었다.
하다의 다섯 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