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l] 자유

by mool


행복의 순간에 대해 적어볼까 하다가, 자유로움을 느꼈던 순간을 먼저 떠올려보기로 했다.


대학생 때, 나는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다. 당시 이런저런 알바 경험이 많던 나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홍대 미대생들을 대상으로 댓생용 누드모델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몸이 아름답다고 여겼다.

사실 중학생 때는 별명이 평면TV 였는데, 가슴이 납작해보인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여자아이들이 "몸은 말랐는데 가슴이 왜 이렇게 커?", "꼭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할 만큼 예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성격 때문인지 어릴적 학습된 수치심 때문인지, 당시에는 여성적 특성이 겉으로 드러나는 게 불편하고 부끄러워서 한참 큰 사이즈의 교복을 입고 다녔다. 몸은 말랐는데 벙벙한 교복을 입으니 가슴이 절벽같이 보였던 것이다.


당시 나는 꽤 오만한 아이여서, 가슴이 납작하네 평면TV네 하며 놀리는 친구들을 보며 '니들이 뭘 알겠냐.'싶어 속으로 은근한 재미를 느꼈다. 혼자만 아는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말이다. '나중에 내 남편은 참 복도 많구나.'생각했다.


중학생 때부터 넘치던 에너지를 어딘가에 소진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어 매일 윗몸일으키기를 해왔기에, 복근도 있었다. 한마디로 몸의 균형이 잘 잡힌 상태였던 것이다. 고등학생때 까지는 연애경험도 없고 내 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대학생이 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딘가에 조금은 공개를 해도 되지 않을까, 아름다운 몸을 어딘가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르바이트 공고에서 '누드모델' 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너무 적나라하게 사진으로 남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자신의 눈을 통해 본 나의 몸을 그린다고 생각하니 뭔가 비밀스러우면서도 우아함이 느껴졌다. 나는 지원서를 냈고, 며칠 뒤 면접을 보게 되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화에 나오는 미술 댓생하는 공간처럼, 탁 트인 2층 사무실이었다. 창문이 커다랗게 있어 개방감이 있지만 미술학원 특유의 느낌처럼, 창이 견고하지는 않았다. 중년의 남자 한 분과 젊은 여자분이 있었다. 면접은 간단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몸을 보여주면 그걸로 끝이었다.


나의 몸이 노출되는 면접인만큼 그들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여러 구도로 몸의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미연의 상황을 방지하여 내 휴대폰으로 촬영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졌고, 그들은 잠시 놀라더니 나의 휴대폰으로 나의 몸을 찍었다.


그 순간이었다.

너무 자유로웠다. 뭐지, 싶을만큼. 나는 거리낌없이 다양한 포즈를 지었고, 그들은 너무 좋다며 다양한 각도의 사진을 찍었다. 성적인 교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자유로웠으며, 그들은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래, 해야겠다.

싶어 합격 통보를 받은 뒤에 당시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옷을 다 벗었다고?"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여러번 되물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옷을 다 벗었단 말이야? 속옷도 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럼 누드모델인데 옷을 입고 하냐, 생각했다. 난 별 생각 없는데 그는 노발대발하였고, 나는 결국 그 아르바이트를 포기했다.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했건, 하지 않았건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그 순간 내가 자유를 느꼈다는 것. 그때의 느낌을 기억한다는 것 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때부터 '틀'을 참 힘들어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있어도, 차려진 밥상을 먹는 것은 나에게 매일의 숙제처럼 느껴졌다. 거적때기 같은 옷을 걸쳐입고 나가도 자유로웠으나, 누군가가 골라준 예쁜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은 꼭두각시가 된 듯 답답했다.


어떠한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던 그 순간.

수치심, 판단,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무수한 경우의 수, 불안,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그저 자유롭게 내가 가진 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던 그 날의 기억. 나는 그 순간을 '자유'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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