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상병 때 있었던 일이라고
상병을 달았던 2023년 1월 어느 날, 중요한 소식을 들었다.
밖에서 복용하는 약은 군 병원에서 무료 처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약은 1달에 약 3~4만원을 내야하는 비싼 약이다. 당연히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군 병원에 찾아가 내가 ALZA 시리즈를 복용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정신과가 마련되지 않았다. 약 처방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의사에게 이 상담 내용을 없었던 것으로 부탁했다.
간부에게 이 약을 먹은 사실을 말하면 직접 관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매번 담당 군의관을 찾아가, 약 1개씩 받아야 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내가 관리할 수 있도록 부대에는 6개월 동안 이 사실을 숨겼다.
병원에 다녀온 후, 부서 간부는 나를 따로 불렀다.
왜 항정신성의약품을 혼자 숨기고 다녔냐, 안 먹으면 어떻게 되냐,
너 ADHD면 근무는 할 수 있냐 등등 질의응답을 30분 간 한 것 같다.
이러한 편견이 싫어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 건데.
아직 ADHD의 선입견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까지 부대에서 아무 탈 없이 지냈는데.
이와 별개로 내가 잘못을 한 것은 사실이니 우선 사과를 드렸다.
내가 병원을 다녀온 이유, 12년째 복용 중인 사실 등등.
기왕 들켰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숨김없이 전부 말했다.
처음엔 험악하던 부서 간부도 대답을 들으니 나아졌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그때 군의관이 정신과 전공이라는 것이다.
이 약은 항정신성의약품이지만 중독성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휴가 때 의사분께 이 사실을 설명하고 소견서를 가져온 것도 설득에 한몫했다.
중대장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이 사실을 묵묵히 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 정도로 항정신성의약품은 골치 아픈 관리가 들어간다.
내가 12년 간 처방을 받아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다.
이 약을 복용 중이란 사실을 아는 간부들은 날 정신이상자처럼 대했다.
사실 정신이상자가 맞긴 하다. ADHD는 질병코드가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그런 시선으로 보이기 싫었다.
지금까지 잘 지냈으면서 이 사실을 늦게 들었다고 눈빛이 바뀌다니.
마치 내가 약을 먹는 것 자체가 죄라고 말하는 것 같은 태도가 아닌가.
새벽에 약을 먹으면 주의력이 교정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상태는 집중력이 높은 사람처럼 비친다.
병원만 아니었으면 이 사실을 숨길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숨긴 것은 명백한 내 잘못이니, 각오하고는 있었다.
중대장도 ADHD를 숨기고 싶은 내 사정을 이해했다.
다음날까지 고민 후 알려준다고 하고 나를 생활관으로 돌려보냈다.
만일 이 사실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또한 ADHD가 있다는 사실을 담당자 이외에 모르도록 배려를 받았다.
이 삼자대면은 부대엔 없던 것으로 하고, 다음 날 똑같이 출근했다.
학교도 친구도 친척도 몰랐던 이 사실을 군대에 들킨 것이 참 골치 아팠다.
휴가 때 술을 먹으면서 가끔씩 이 날의 이야기를 한다.
병장이 된 현재도 무리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이후로 약에 관해선 어떠한 트러블도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아니었다.
분명 지금도 그때 간부들이 보는 시선을 기억한다.
평소 같은 룰을 어긴 사람을 훈계하는 눈빛이 분명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이물질을 본듯한 눈빛과 말투였다.
아직 약 복용을 한다는 사실을 첫 만남 때 말하긴 어렵다는 사실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