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생존 문제다
어학원 등록을 안 했던 이유는 글쎄.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공부라고 해봤자 학교에서 배웠던 영어, 취업하려고 3달 간 다녀본 토익 학원, 그 정도가 다다. 아, 휴학할 때 1달 동안 신촌 영어 학원에서 외국인과 스피킹을 해본 경험은 있다. 그게 끝. 그리고 퇴사 후 출국하기까지 약 3개월 시간 동안 라이온킹 영화를 영어 자막으로 봤다. 그래서 몇 개의 문장을 외운 정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갈 때면 사람들은 도착하고서 최소 1개월은 어학원을 다닌다. 영어도 배울 수 있지만, 친구도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친구가 필요할까. 친구를 만들러 캐나다 온 것도 아닌데. (이건 큰 착오였다.)
그리고 2년 반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돈과 퇴직금이 있긴 했지만 그걸 깨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미 워홀 준비하면서 비행기표 끊고, 노트북 사고, 캐리어 사고, 신청비도 내면서 5백만 원은 이미 까먹었다. 그래서 더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탓이리라.
또 어학원은 어찌 됐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특히나 밴쿠버는 한국인이 많은 도시 중 하나였다.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싶진 않았다.
30인치 캐리어, 28인치 캐리어, 24인치 캐리어까지 총 3개 캐리어를 들고 공항버스를 타고 시간이 되었던 엄마와 막내동생, 그리고 내 연인과 함께 출발했다. 그렇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7년을 만난 남자친구.
공항에서 가족들과 바이바이하고 검색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남자친구가 저 멀리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여자친구가 1년 동안 타국에 가있는데 인사를 안 해?'라는 괘씸한 생각으로 부르는데, 저 멀리서 몸만 잠깐 돌리고 손을 휘젓는다.
설레는 마음과 이 옷 저 옷 껴입어 둔해진 몸, 그리고 노트북 가방과 백팩, 크로스백에 손엔 여권과 항공권까지 있으니 정신이 너무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웃으며 검색대를 들어갔다.
심사까지 마치고 나오는데 아차차. 남자친구에게 줄 편지를 전날 저녁에 열심히 써놓고 노트북 가방에 뒀었는데 못 전해줬다. 사진을 찍어서 남자친구에게 '아 나 이거 주려고 했는데 깜빡하고 못 줬다 ㅋㅋㅋ'하며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심사 끝나고 들어왔다 하며 남자친구 행방을 물었는데, 남자친구는 따로 전철을 타고 간다고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헤어졌단다.
무슨 일인가 나중에 들어보니 너무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다고. 난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는데...
혼자서 캐리어 3개를 끌고 크로스백에 노트북 가방에 백팩까지. 어떤 정신으로 공항을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정보를 공유하는 다음 카페 '우밴유'에서 많이 보는 밴쿠버 공항의 상징인 동상이 있는데 그것도 눈으로 보며 '와 나 진짜 밴쿠버네?'하고 느꼈을 뿐 사진 찍을만한 여유도 없었다. 다들 어떻게 그 동상을 찍을 수 있는 건지.
다행히 11개월 먼저 가있던 중학교 친구 Ashley가 공항에 마중 나와줬다. 그래서 캐리어 3개를 혼자 가지고 가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도착하던 날은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다. 친구가 머물고 있는 집에 도착하자 비에 젖은 풀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공기가 너무 좋은데? 풀냄새 너무 좋아?" 그러자 친구가 하는 말, "이 냄새? 이거 마리화나 냄새야. 너 이 냄새가 좋아? 큰일 났네." 뭐야, 나는 이거 비에 젖은 상큼한 풀냄새인 줄 알았다고. 그렇게 캐나다 밴쿠버는 나에게 Weed(위드, 마리화나) 냄새로 첫인상을 남겼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 달 남짓 남은 Ashley 덕분에 나는 도착하자마자 머물 숙소를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Ashley가 캐나다에서 만난 한국 언니 Jamie가 있어 당분간 의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큰 착오였다. Ashley와 Jamie언니가 머물던 집을 양도받으려 하니 생각보다 집값이 비쌌다. 싼 집을 구해야 했고 언니가 룸메이트를 구하기 전까지만 시간이 있었다.
Ashley는 떠나기 전, 오로라를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가지고 온 현금이 200만 원뿐인데. 결국 한국에 모아둔 돈을 조금 꺼내어 오로라 여행을 갔다. 그랬더니 캐나다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초기 정착 자금으로 갖고 온 200만 원을 몽땅 다 써버린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캐나다에 머물면서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길거리에 나앉기 전에 집도 구하고 잡(Job)도 구해야 했다.
나... 할 수 있겠지?
이 글은 2017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