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 2개월 차, 밴쿠버 고급 콘도로 이사하다
3월 1일, 눈이 좀처럼 내리지 않는 밴쿠버에 폭설이 내렸다. 그날 나는 19층, 새로운 내 방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이게 진짜 내 방이라고?’ 믿기지 않았지만, 캐나다에도 내가 정식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일주일 전, 급 계약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갖고 온 건 3개의 캐리어뿐이었고, 기존에 머물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지라 드르륵드르륵 Jamie 언니와 캐리어를 나눠 끌고 새 집으로 들어왔다.
내 방은 Living Room이었다. 단어에만 Room이 붙었지, 사실상 그냥 거실이었고, 거실 제일 안쪽에 가림막을 만들어둔 곳이었다. 사생활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현관문 열고 닫는 소리, 욕실에서 나는 물소리, 현관 앞에서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 주방에서 음식 하는 소리와 냄새는 모두 내가 머무는 '방'에서 듣고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 조망권과 일조권은 최고였다. 난방도 바로 옆에 있어서 따뜻했고, 높은 건물에 높은 층이었기 때문에 가려지는 것 없이 밴쿠버 다운타운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오히려 거실이 내 방이었기 때문에 눈치 안 보고 주방이나 화장실을 쓸 수 있었달까.
입주하고서 확인한 나의 하우스메이트들. 한국인이 2명, 대만인도 2명, 일본인이 1명 있었다. 한국인 1명과 대만인 1명이 가장 크고 비싼, 화장실이 딸린 Master Room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고, 그다음으로 작은 방, Second Room은 일본인이, 그리고 창고와 같은 Den을 대만인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베란다인 Solarium은 나와 동갑인 한국인 친구가 나와 같은 시기에 입주를 했다.
외국인과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너무 됐지만, 다들 착하고 배려심 많은 친구들이었다. 같은 Asian이라 통하는 것도 있었고, 정확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이라 좋았다.
청소당번은 매월 달라진다. 집주인이 매월 Rent fee를 받으러 방문하면서 주방, 현관, 욕실 등을 나눠서 당번을 정해준다. 입주한 첫 달, 나는 욕실 청소 당번이 되었다.
욕실이자 화장실은 정말... 더러웠는데.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들은 다들 착했지만, 청소는 안 하고 사는 것 같았다.
새롭게 이사도 했고, 깨끗한 마음으로 청소를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청소에 필요한 세제와 도구들이 아예 없었다. 청소를 안 하면 벌금을 문다고 했는데... 때문에 근처 Dollarama에 가서 구매하고 집주인에게 비용을 청구했다.
씻으러 들어갔는데 더러우면 찝찝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곰팡이와 물때가 엄청났다.
서양 화장실이 많이들 그러하듯 이곳도 건식이었다. 해서 샤워를 할 수 있는 샤워 부스가 따로 있고 물이 밖으로 튀지 않도록 문을 꼭 닫고 해야 했다. 그게 처음엔 정말 불편했다. 한국에서는 물을 여기저기 튀어도 상관없으니 허리를 숙여 머리를 감고, 팔다리를 쫙쫙 뻗어서 구석구석 샤워를 했었다. 하지만 이 캐나다의 작은 샤워 부스에서는 허리를 굽혀 머리를 감는 것도, 팔을 쫙 펴서 닦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청소할 때서야 더 큰 불편함을 느꼈는데, 바로 변기나 세면대를 물로 시원하게 씻어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물을 뿌리는 대신에 세제를 써서 깨끗하게 닦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샤워 부스 안에 있는 곰팡이를 죽이려고 독한 세제를 쓰니 나도 죽을 것 같았다. 세제 냄새를 온 집안에 풍기며 엄청 열심히 빡빡 닦고 있는 것을 본 마스터룸 메이트가 "이렇게 청소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했었다. 그래, 너무 더럽긴 했었어...
화장실 청소에만 장장 2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빡빡 닦아도 관리한 지 오래되어 묵혀진 곰팡이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이다. 앞으로 다들 깨끗하게 잘 써주겠지?
누가 워홀 가서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고 알았을까. 지금까지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는지라 이렇게 화장실청소가 필요한지도 몰랐는데. 여기 와서야 알았다. '아, 엄마가 진짜 매번 힘들었겠구나.'
나 혼자 내 살림을 차려야 하다 보니 그전에는 Jamie 언니와 Ashley가 쓰고 있던 브리타를 썼는데, 이젠 내 전용 브리타도 필요했다. 밴쿠버 수돗물은 그냥 마셔도 된다곤 했지만, 수돗물 자체가 좀 찝찝하게 느껴져서 브리타를 장만하기로 했다. 새로운 집에 공용 브리타가 있긴 했지만, 용량이 적어서 어느 때 보면 물이 덜 채워져 있기도 해서 내 브리타를 사기로 했다. 물론 돈이 없는 처지다 보니 이곳저곳 돌아디니면서 가격 비교를 했고, 그나마 좀 저렴하게 나왔을 때 구매했다.
독립해서 나와보니 다 돈이더라.
한국에 있을 때 집에서 혼자 차려먹은 적은 많지만, 그래봤자 아주 쉬운 계란요리 거나 엄마가 전날 해둔 음식을 데워먹는 정도였다. 근데 캐나다에 오니 전날 남은 음식을 해줄 엄마도 없고, 계란요리마저도 몇 개 하다 보니 질려진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카레와 김, 김치도 떨어져서 밴쿠버 현지에서 식재료를 구해 음식을 해야 했다.
가장 해 먹기 쉬웠던 건 고기 구워 먹는 거였다. 물론 고기를 잘 골라야 했다. 부드러운 삼겹살 고기만 먹었는데, 잘못해서 퍽퍽살을 사면 한동안은 맛없는 집밥을 먹어야 했다. 골고루 영양 섭취를 하기 위해 구워 먹을 수 있는 mushroom, onion, green onion도 함께 가서 구워 먹었다.
양파를 망으로 사다 보니 양파로 해 먹을 수 있는 정체불명의 요리도 다양하게 해 먹었다. 만만한 냉동식품을 사서 먹기도 하고, 야채샐러드 같은 게 팔아서 드레싱과 함께 사서 야채를 섭취하기도 했다.
타지에 나와서 제대로 잘 먹어줘야 건강하게 일도 해서 돈을 벌지 않겠냐고.
물론 가끔 Kim's mart나 H-mart에 가서 한국 라면을 사 오기도 했다.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지내는 게 굉장히 좋았던 이유는, 마트가 street마다 있고, 한인마트도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생각보다 homesick 같은 건 느낄 새가 없었다.
정리할 때 요긴하게 쓰기 위해 몇 개의 줄정리 똑딱이를 갖고 왔는데 그중 하나가 똑! 하고 끊어졌다.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하나는 충전기 선, 하나는 이어폰 선 해서 정리해야 했는데 하나가 끊어지니. 아쉽지만 하나를 보내줄 수밖에.
핸드폰 충전기 선이 난방기구에 들어가 타버렸다. 하마터면 불날 뻔. 잠든 새에 매트리스 바로 옆에 있던 난방기구에 들어가 충전선을 익혀버린 것이다. 여유분 없이 갖고 왔는데 아깝게도 사야 했다. 나 지금 돈 없는 데에!
이 모든 건, 워홀 떠나기 전에는 미처 상상 못 한 일이었다. 그저 잠 잘 곳, 밴쿠버에 살 수 있는 일을 구하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그 누구도 "네가 가서 곰팡이 낀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될 거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사소하고도 소소한 밴쿠버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나 첫 Pay는 언제 받을 수 있는 거지?
이 글은 2017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