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빠른 편이다.
내가 처음 기억하는 나도 걸음이 빨랐다.
아버지가 태산처럼 보이던 시절... 주말이면 함께 가던 목욕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와 발을 맞춰 나란히 걷고 싶다는 생각에 총총총 빨리도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걸음은 빨라졌고, 지금도 빠르게 걷는다.
가끔은 느긋하게 걷고 싶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느리게 걷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앞만 보고 총총총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왔다. 늘 그랬다. 항상 빨리 걷는 아이였다.
얼마 전 다리를 다쳤다.
제대로 앉기도 서기도 걷기도 힘들다.
그래서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아니 느리게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깁스는 하지 않았다. 그냥 걸음이 조금 불편했다.
느리게 걷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1년을 넘게 다니던 출근길 골목길의 아가자기한 가게도,
10년을 가까이 다니던 집 앞 골목의 작은 꽃도,
빠르게 걷던 아이가 마음 것 걷지 못하니 답답하다
하지만 느리게 걷는 아이의 마음은 충만하다
앞서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빠르게 걸어가 스치듯 옆모습만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낯선이의 옆모습이 스치고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때로는 천천히 낯선 것들과 마주하고 낯선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것만을도
조금은 충만해지는 하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