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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한량 Aug 06. 2015

보지 못 했던 것들

걸음이 빠른 편이다.

내가 처음 기억하는 나도 걸음이 빨랐다.


아버지가 태산처럼 보이던 시절... 주말이면 함께 가던 목욕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와 발을 맞춰 나란히 걷고 싶다는 생각에 총총총 빨리도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걸음은 빨라졌고, 지금도 빠르게 걷는다.


가끔은 느긋하게 걷고 싶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느리게 걷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앞만 보고 총총총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왔다. 늘 그랬다. 항상 빨리 걷는 아이였다.


얼마 전 다리를 다쳤다. 

제대로 앉기도 서기도 걷기도 힘들다.


그래서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아니 느리게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깁스는 하지 않았다. 그냥 걸음이 조금 불편했다.


느리게 걷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1년을 넘게 다니던 출근길 골목길의 아가자기한 가게도,

10년을 가까이 다니던 집 앞 골목의 작은 꽃도,


빠르게 걷던 아이가 마음 것 걷지 못하니 답답하다

하지만 느리게 걷는 아이의 마음은 충만하다


앞서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빠르게 걸어가 스치듯 옆모습만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낯선이의 옆모습이 스치고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때로는 천천히 낯선 것들과 마주하고 낯선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것만을도 

조금은 충만해지는 하루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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