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 편견 너머
『그린북』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영화가 시작되고 ‘그린북’이 흑인을 위한 미국 남부 여행 안내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 이야기가 단순한 버디 무비가 아니라는 예감을 받았다.
1962년 인종 차별이 여전히 뿌리 깊은 미국. 이탈리아계 백인인 토니 발레롱가와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남부 투어는 두 남자의 전혀 다른 삶이 얽히는 여정을 따라간다. 토니는 다혈질이고 직설적인 성격의 평범한 남성이다. 반면 돈은 고고한 예술가이자 자신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이처럼 대비되는 두 인물은 여행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차별과 오해가 아닌 존중과 우정으로 나아간다.
돈이 켄터키에서 치킨을 처음 먹는 장면은 유쾌하지만 동시에 복잡한 감정을 품게 한다. 흑인이기에 당연히 프라이드치킨을 좋아할 거라 짐작한 토니의 태도는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그러나 돈은 그 편견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웃고 넘기며 토니에게 배려와 이해를 가르친다. 이 장면은 두 인물이 점점 가까워지는 기점을 만들어주고, 그들의 관계가 단순한 고용주와 직원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돈 셜리는 단순히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연장에서는 환호를 받고도 그 공연장의 화장실조차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 그는 품위 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고정된 틀에서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토니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다. 처음엔 흑인과 일하는 것을 꺼리던 그가 돈을 점점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나서고 심지어 ‘그린북’을 찢어버릴 만큼 분노하게 되는 장면에서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보게 된다. 사람은 배울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다시 품게 만드는 따뜻한 겨울 저녁 주인공 돈의 연주처럼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