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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낮지만 울림은 깊은.

by 책방별곡

인생을 가르치되 삶을 강요하지 않는 글, 목소리는 낮지만 울림은 깊은 이야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오랫동안 조용히 숨을 고르게 되었다. 단순한 강의록이나 철학적 수필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이 응축된, 마치 오래된 산문시집 같은 울림을 지닌 마지막 인사이자, 삶의 이정표를 건네는 손길처럼 느껴진다.

가르치되 훈계하지 않고, 깨우치되 과시하지 않는다. 글 한 줄 한 줄마다 깃든 낮은 몸가짐과 따뜻한 시선은 우리의 마음을 억지로 흔들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자기 성장을 목표로 삼지만, 그것이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때때로 잊는다. 나를 둘러싼 타인의 말, 표정, 배려, 심지어 갈등까지도 모두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풍경이라는 것.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금 누구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깎이고 다듬어지고 있는 걸까?

『담론』은 동양 고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삶의 지혜를 끌어오지만, 그 인용들은 결코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의 우리에게 꼭 맞는 옷처럼 자연스럽다. 선생은 공자나 장자, 묵자와 같은 사상가들의 말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듯 풀어내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이 책을 읽으며,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보다,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바람이 앞섰다. 사람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 빛나고, 길을 잃기도 하며,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말과 말 사이, 침묵과 침묵 사이, 그 사이에 흐르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일깨워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말들은 점점 가벼워진다. 그럴수록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 같은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해야 한다. 더딜지라도 깊은 사람, 작지만 단단한 말.
『담론』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맺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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