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 탑을 내리고 연필을 들다

by 책방별곡

거실 한쪽 벽에 걸린 에펠탑 그림은 십 년이 다 돼 간다. 처음 걸었을 때는 집이 조금 그럴듯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시선이 잘 가지 않았다. 프레임 가장자리에 쌓인 먼지, 늘 같은 자세로 서 있는 철골 구조물을 바꾸고 싶었다. 기왕이면 내가 그린 그림으로.

그래서 마트 문화센터를 등록했다. 집 근처 장바구니 동선 안에 있는 수업이라 빠지지 않을 듯했다. '기초반'이라는 단어도 걱정을 누그러뜨렸다. 잘 못 그려도 되는 곳, 연필을 잡는 법부터 알려줄 곳이라 생각했다. 그림 실력보다는 용기를 사는 기분으로 수강 신청을 했다. 10회에 10만 원. 이 정도면 실패해도 크게 아깝지 않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첫날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미 손에 힘이 들어간 사람들, 스케치북 위에 망설임 없는 선들과 화려한 색채들에 주눅이 들었다. 기초반이라기엔 너무 익숙한 몸짓들이었다. 재수강을 여러 번 해서 강사님과 친숙하며 자신들의 작품을 그리고 있는 거의 반 전문가들이었다. '내가 잘못 온 건가?' 연필을 쥔 손에 괜히 땀이 찼다.

강사는 5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선 긋기 설명은 몇 마디로 끝났다. 대신 수업 내내 아줌마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웃음소리가 교실을 채웠지만 내 스케치북은 엉망이었다. 이 선은 왜 이렇게 그어야 하는지, 손목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질문을 삼켜가며 혼자 흉내를 냈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90분이 이렇게 길 수 있나 싶었다.

'가격이 싸서 그런가.'
'이 정도면 취미로 괜찮은 거 아닌가.'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속으로 혼잣말이 늘어났다. 그림을 배우러 왔는데 마음은 자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번 더 들어볼까 잠시 고민했다. 익숙해지면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다음 주에는 조금 더 설명을 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원했던 건 대충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었다. 웃음 섞인 수업도 아니었다. 내 선이 왜 흔들리는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차분히 알려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환불을 했다. 미련은 오래 남지 않았다. 오히려 수업 내내 긴장했던 숨이 조금 편해졌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에펠탑 그림이 다시 눈에 들어오자 주저 없이 폰을 들고 검색창에 천천히 글자를 입력했다.
'성인 미술학원.'
내가 그린 그림이 걸릴 주방 벽을 떠올리며 검색창 스크롤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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