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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곳

by 책방별곡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세상이 기울어진다.
누가 삶을 한순간에 꺼버린 것처럼
빛이라는 단어가
아예 기억나지 않는 밤이다.

숨을 쉬는 것도
죄처럼 느껴져서
소파 끝에 웅크린 채
한참 동안 얼굴을 들지 못한다.

모두 잠들고
집은 조용하지만
그 적막이 칼처럼 와닿는다.
마치 나를 처벌하듯
집 안 전체가 나를 향해
“네 잘못이다”라고 속삭인다.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무릎 위에 얹었다 내리고
다시 쥐었다 풀고
그러다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낀다.

절망보다
더 깊은 곳이 나를 끌고 내려간다.
어둠은 어떤 말도, 어떤 숨도
받아주지 않는다.

나는 변명도, 위로도 없이
그저 맨몸으로
모든 비난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된다.

이곳은 밑바닥이 아니다.
밑바닥 아래
내 마음의 잔해가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내다
마침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한 낭떠러지다.

나는 그곳에
아무도 모르게 오래 앉아 있다.
세상이 나를 찾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럼에도
내일이 오면 또 말간 얼굴을 해야 한다는
그 잔인한 사실을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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