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릴리와 찌르레기

우리는 헬멧을 쓰고 정원으로 나간다

by 책방별곡

​상실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삶의 정원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넷플릭스 영화 <릴리와 찌르레기>는 아이를 잃은 부부가 그 폐허가 된 정원을 다시 가꾸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릴리의 뒷마당에 불청객처럼 날아든 찌르레기 한 마리. 이 작고 공격적인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릴리를 공격하며 가뜩이나 무너진 그녀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영화 속 찌르레기는 단순히 성가신 새가 아니다. 그건 릴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아니면 싸워서 없애버리고 싶었던 고통의 실체와도 같다. 릴리는 처음엔 그 새를 죽이려고 독약까지 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마음에 닥친 불행을 어떻게든 지워버리려고 잊으려고 독한 마음을 먹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의사 래리의 말처럼 찌르레기는 그저 자신의 둥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뿐이다. 릴리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상실의 아픔도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가 아니라 삶의 둥지 한편에 묻고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남편 잭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병원으로 도망쳤고 릴리는 남은 현실을 버티며 홀로 싸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파하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 보는 과정은 생각보다 덤덤하다. 그저 서로의 빈 틈을, 그 구멍 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백미는 엔딩 장면이다. 잭과 릴리는 찌르레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미식축구 헬멧을 쓰고 함께 정원으로 나간다.


나는 이 장면이 위로로 다가왔다. 슬픔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찌르레기는 여전히 날아다니고 때로는 우리를 쪼아댈 것이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안다. 헬멧을 쓰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그 정원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상처가 깨끗이 나아야만 다시 웃을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상처는 흉터로 남고 슬픔은 불쑥불쑥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헬멧을 눌러쓰고 텃밭을 가꿀 수 있다고.

그 불완전한 공존이 바로 진짜 치유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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