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달려온 한 시간 반.
시댁 현관에 들어섰을 때, 나를 맞은 것은 쿵, 쿵. 칼손잡이로 배추 줄기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왔나? 배추 좀 부쳐라.”
어머니는 소금에 절여 축 늘어진 배추의 줄기 부분을 찧고 있었다. 줄기를 평평하게 펴야 전이 곱게 부쳐진다는 말이 오늘따라 뻣뻣한 내 자아를 납작하게 누르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겉옷을 벗고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앞치마를 둘렀다.
하얀 밀가루 반죽에 노란 배추 속잎을 푹 담갔다가 건진다. 달궈진 팬 위에 올리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가 피어오른다. 뒤집개로 배추 줄기를 꾹꾹 누른다. 배추는 말없이 팬 바닥에 엎드린다. 한 장, 두 장, 열 장. 노릇하게 익어가는 전을 채반에 쌓아 올리는 동안 내 안의 말들도 그 아래 켜켜이 눌려 소리를 잃었다.
“다 했으면 이제 조기 좀 구워라.”
기름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생선이 올라간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달궈진 팬에 생선을 올리자 기름이 사방으로 튄다. 타닥, 타닥. 손등에 튀는 기름의 따끔거림보다 더 아픈 건 이유를 알 것 같은 자괴감이었다.
생선 살이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뒤집개질을 하며 계속 엄마, 아빠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는 정작 우리 부모님 생신상에 미역국 한 번, 생선 한 마리 제대로 올려드린 적이 있었던가.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생선을 굽는 내 모습이 뜨거운 불판 위에서 눈을 허옇게 뜬 채 익어가는 그 생선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어머니, 오늘 생신이신데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요. 제가 살게요.’
이 한 문장이 왜 이렇게 먼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은 매캐한 연기와 함께 환풍구 속으로 사라졌다. 착한 며느리, 불평 없는 아내, 순종적인 딸. 그 오래된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오늘도 나를 부엌 한구석에 붙잡아 두었다.
식탁에 상이 차려졌다.
배추 전과 생선구이, 미역국, 잡채, 샐러드, LA갈비구이까지. 시아버지는 수저를 들었고 어머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상을 둘러봤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나는 젓가락으로 배추전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고소해야 할 기름 맛도, 배추의 단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생선구이도 마찬가지였다. 비린내만 남고 살은 종잇장처럼 씹혔다. 나는 씹고 삼키는 일을 의무처럼 반복했다. 맞은편에 앉은 아이를 힐끗 보았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나를 꼭 닮아 있었다. 말보다 먼저 어른들 표정을 살피고 숟가락을 드는 속도마저 눈치에 맞췄다. 식사를 시작한 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의 그릇은 비어 있었다. 더 먹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아이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이 꼭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왔다가 이내 다시 밥상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그 눈길을 피하며 물을 마셨다.
남편 없는 시댁, 시아버지의 생신날.
‘착한 아이’라는 껍데기를 아이에게까지 물려주고 나는 나를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