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붉은 좌석에 몸을 파묻고
조명이 서서히 꺼지면 내 심장은 반대로 켜지곤 했다.
영사기가 쏘아 올린 먼지 섞인 빛줄기를 타고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비로소 숨을 쉬었다.
영화는 나에게 도피처가 아니라 유일하게 선명한 현실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먹먹한 여운,
그 열기 하나로 며칠을 살아낼 연료를 얻었다.
어느 날부턴가 그 세계의 비상구가 열리지 않는다.
극장 대신 습관처럼 OTT 플랫폼을 켠다.
수백 개의 썸네일이 화려하게 유혹하지만 손가락은 허공을 맴돌 뿐이다.
명작이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영화를 봐도 마음은 젖지 않은 장작처럼 푸석하다.
화면 속 배우들은 울고 웃는데 나는 건조한 눈으로 러닝타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다.
감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지루함이, 열정이 있어야 할 자리에 피로가 똬리를 튼다.
나를 구성하던 가장 큰 조각이 떨어져 나간 기분이다.
사랑하던 연인에게 더 이상 설렘을 느끼지 못해 이별을 고해야 할 때처럼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인다.
다시 가슴이 뛸 수 있을까.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구원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인생이라는 영화의 가장 지루한 롱테이크(Long Take)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컷 소리가 나기를 누군가 다시 '액션'을 외쳐주기를 기다리며
꺼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