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선샤인>

사랑은 문신 같은..

by 책방별곡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종종 고통스러운 기억을 도려내고 싶어 한다. 특히 이별 후의 쓰라린 상처라면 더욱 그렇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라쿠나(Lacuna)'라는 기억 삭제 회사를 통해 사랑의 끝에서 도망치려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어떻게 지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이다.

​주인공 조엘(짐 캐리)은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 자신을 지웠다는 사실에 분노해 똑같이 기억 삭제를 의뢰한다. 하지만 시술이 시작되고, 최근의 다툼부터 행복했던 첫 만남까지 기억을 역순으로 지워가는 과정에서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 기억들은 고통인 동시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일부였음을.
​무너져가는 기억의 집 속에서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손을 잡고 도망치는 장면은 처절하고 아름답다. 그는 잊고 싶었던 수치스러운 유년의 기억 속에 그녀를 숨기려 한다. 뇌세포는 죽어가고 이미지는 흐려지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감정만은 끝까지 붙들고 싶어 하는 그의 몸부림은 역설적으로 사랑의 본질을 증명한다. 사랑은 머리가 아닌 존재 전체에 새겨지는 문신과도 같은 것임을 말이다.



​모든 기억이 지워진 후 두 사람은 운명처럼(혹은 본능처럼) 다시 몬탁의 해변에서 만난다. 서로가 누구였는지도 모른 채 다시 사랑에 빠지지만 곧 자신들이 과거에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싸우고 헤어졌는지 알게 된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요. 곧 당신을 지겨워할 거고 당신은 나를 한심해하겠죠."
클레멘타인의 냉소적인 고백에 조엘은 대답한다.
"Okay(괜찮아요)."
​이 짧은 한마디는 '우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적 결말이 아니다. '우리는 또 싸우고 상처받고 밑바닥을 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겠다'는 용기 있는 선언이다.

​영화는 말한다. 아픈 기억을 삭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눈부신 햇살은 티 없는 마음에 비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고 얼룩진 마음 틈새로 비칠 때 더 찬란한 법이다.
​짐 캐리의 쓸쓸한 눈빛이 유독 오래 남는 영화다. 헤어짐의 아픔이 두려워 사랑을 망설이는 모든 분에게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 "Okay"를 선물하고 싶다. 다시 아플지라도, 지금의 설렘은 죄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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