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혼모노》

당신의 우유에는 바나나가 있는가

by 책방별곡

무당이 신을 잃었다. 그러나 신을 받은 건 경험도 내공도 없는 신내기였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를 읽으며 자꾸 그 장면이 걸렸다. 노련한 문수무당은 바나나 맛 우유를 집어 들고 신내기는 바나나 우유를 마신다. 한 글자 차이. 그런데 그 한 글자가 전부다. 진짜와 가짜. 원본과 모방. 혼모노와 니세모노. 문제는 그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흐릿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단편 〈스무드〉의 듀이는 흠결 없이 매끈한 예술 작품을 다루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런 그가 종로에서 태극기 부대와 마주친다. 분노도 결핍도 말끔히 소거된 세계를 살아온 사람이 핏대 세운 노인들의 버석거리는 손아귀와 충돌하는 장면이 씁쓸하고 기묘하다. 매끈함이란 결국 무언가를 지워버린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또 다른 이야기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영화감독을 향한 팬덤. 그들은 죄책감과 쾌락을 뒤섞은 채 숭배의 대상을 바라보고 누가 진짜 팬인지를 가리며 배제하고 권력을 나눈다. 껍데기만 남은 믿음. 그러나 그 믿음이 얼마나 정교하게 포장되어 있는가.

완독 후 자문한다.
나는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있는가, 바나나 맛 우유를 마시고 있는가.
그리고 솔직히 그 둘을 구별하려 한 적이 있기는 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왕과 사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