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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Oct 25. 2023

아들은 아빠가 딸은 엄마가.

"엄마, 우리 뽀뽀하자."

"그래. 뽀뽀~."

사랑스러운 아이의 조그마한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아니~이렇게 말고 저기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아줌마랑 아저씨처럼 뽀뽀하자."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TV에서는 밤톨같이 머리를 깎은 송중기와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저렇게 생기고 싶은 송혜교가 열정적으로 키스를 하는 중이었다. 시청률이 거의 40프로대였던 태양의 후예에 빠져서 아이가 있어도 틀어놓았다.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며 거실 한쪽 편에서 블록놀이를 하고 있기에 안 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평소에 자주 듣던 거미의 "You're my everything~." 노래가 나오니 귀에 익숙해서 보고 있었나 보다. 이제 6살, 만으로는 4세인 녀석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00야, 저건 뽀뽀가 아니야."

"그럼?"

"키스라는 건데 엄마랑 너랑은 할 수가 없어."

"키스?"

"응. 키스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둘이서 하는 거야. 너도 나~중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 가서 해."

"저렇게?"

"응. 저렇게... 그런데 여자가 싫다고 하면 억지로 하면 절대 안 돼! 알았지?"


이렇게 마음의 준비 없이 얼떨결에 첫 성교육을 하게 됐다.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아이가 고학년이 될 때까지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키스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이면 채널을 급하게 돌렸다. 아이는 드라마를 보다가 왜 바꾸냐며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재미가 없어서 다른 거 보려고." 거짓말이다. 같이 볼 자신이 없었다. 태양의 후예 사건 이후로 이렇다 할 성교육을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하고 있겠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5학년이 되면서 주위에서 흉흉한 소문들을 듣기 시작했다. 근처의 모 초등학교에서는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놀이가 남녀 할 것 없이 유행이라는 든 지, 초3 여자아이가 임신이 됐는데 너무 어려서 중절 수술을 할 수 없다는 영화보다 더 잔인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에 경악을 했다.


같은 반 엄마의 6학년이 되면 가방에 콘돔을 챙겨서 넣어줘야 된다는 말에 심란해졌다. 내 눈에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의 눈빛을 지닌 개구쟁이 초등학생인데 콘돔을 넣어주면 오히려 성경험을 부추기는 거 아닌가? 시대에 뒤떨어진 조선시대 생각인 건지 헷갈려서 그날 밤 남편에게 물었다. 나는 여자라서 남자아이의 성은 짐작이 안 된다. 같은 동성으로서 솔직하게 콘돔을 사줘야 하냐고 물었다. 말을 듣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 역시 겉과 다르게 신랑은 유교보이였다. 생각도 없는 아이를 오히려 자극하는 거라며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했다. 아이는 이제 예비중학생이 되었고 나는 이제 궁금해진다. 이미 콘돔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몇 주전 녀석과 꽈추형 유튜브를 같이 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하고 싶은 나의 의도였다. '금한 거 물어보면 당황하지 말고 대답해 줘야지.' 기생충의 대사처럼 다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자위, 2차 성징, 발기, 몽정 등등 영상에 나오는 단어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킥킥 거리며 웃는 게 아닌가! 불현듯 머릿속에 선배엄마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초3이 되면 친구들끼리 야한 동영상 같이 볼 것이고 이미 엄마보다 많이 알고 있을 거라는 말에 코웃음을 쳤었다. 우리 아이는 아닐 거야,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다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치 없는 엄마였다. 녀석은 이미 변성기가 와서 목소리가 굵어졌고 중요부위에 2차 성징도 시작됐다. 정신적 사춘기만 걱정했지 신체적 변화는 감지도 못했던 느린 엄마였다.


그날 이후로 입시 관련 영상 이외에 성교육 영상도 틈틈이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교육을 아들은 아빠가, 딸은 엄마가 즉, 같은 성끼리 하는 게 어색하지도 않고 받아들이기에 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천하태평이다. 자기는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다 알아서 하니까 놔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사고라도 치면 어떡하는데?"

"왜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쓸데없이 걱정하는데? 믿어라 쫌!! "

맞는 말이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을 육아서에서 수도 없이 읽었는데 나는 또 불안하고 흔들린다.

그러나 우리 때와는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확연히 다르다. 이틀 전에 저녁식사를 하며 아이는 또 나를 놀라게 했다.


그날도 뉴스나 맘카페에서 성 문제 관련 기사를 읽었던 것 같다. 불안해진 나는 밥을 먹는 아이의 입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아들아, 성 관계 할 때 꼭! 꼭! 콘돔을 써야 한다. 임신되면 여자친구와 아이는 네가 다 책임져야 하는데 그럴 수 있나? 엄마랑 아빠는 도와주지 않을 거다. 그러니 네가 항상 정신 차리고." (짧게 하려 했는데 잔소리가 되어버렸다.)

"... 그런데 여자친구가 콘돔 싫다고 하면?"

"?!!!!! (차분해지고 싶지만 목소리가 떨린다) 여자가 싫다고 하는 경우는 없다. 설사 그렇게 말해도 네가 꼭 피임을 해야 한다."


내 눈에 녀석은 여전히 해맑은 꼬마 아이인데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청소년이 읽을 만한 성교육 관련 책을 검색해 구입했다. 밤에 자기 전 슬며시 건네주며 이 한마디를 해줬다.

"엄마는 너를 믿는다. 알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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