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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Nov 15. 2023

미운 우리 새끼

"우리 00 이가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분들 박수~~~."

사회자의 짓궂은 질문에 돌잔치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아니다. 아빠랑 판박이였으면 좋겠다는 분들 박수~~~."

"와아~~~!!!"

오직 한 사람, 아이의 할머니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위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신다. 민망한 상황에서 아버님이 앉으라고 팔을 잡아당기시자 어머니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으셨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아이는 계속 보채고 엄마품에만 있으려고 했다. 돌잔치에 온 손님들 신경 쓰랴, 칭얼거리는 아이를 신경 쓰랴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나는 그제야 시어머니의 지금까지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양수가 터지고 3시간 만에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내 가슴에 올려졌을 때 바로 알았다. 나의 아기 시절과 똑 닮은 내 새끼라는 걸. 반면에 신랑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눈, 코, 입, 머리 두상 심지어 두툼하고 높은 발등마저도 엄마의 DNA만 물려받은 것 같은 아이의 얼굴에 남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 아들이 아닌 것 같다. 서 씨 집안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멱살을 잡고 쥐 흔들고 싶었다. 같이 만들어 놓고 지 얼굴 안 닮았다고 저렇게 티 나게 섭섭해하다니 어리다 어려 한심하게 보였다.


그날 돌잔치에서 시어머니의 행동을 본 후 시댁에 갈 때마다 우리 아이가 차별을 받는 듯한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는 같이 사는 형님네 아이들 중 유독 둘째 아이를 예뻐하셨는데 큰 아주버님의 얼굴에서 성별만 바뀐 모습이었다. "우리 00이 피부도 하얗고 얼굴도 작고 어쩜 이리 예쁘노~."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옆에 딱 끼고 앉아서 밥도 먹이고 반찬도 올려주셨다. 반면에 우리 아이는 낯도 가리고 할머니를 어려워해서 옆에 앉지를 않았다. 할머니에게 마구마구 애교도 부리고 예쁜 짓 좀 했으면 좋겠는데 내 옆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제일 참기 힘든 것은 우리 애들은 미역국만 있으면 밥 잘 먹는데 00은 미역국 좋아하나라고 물을 때였다. 웃으며 00도 미역국에 밥 말아주면 잘 먹어요 대답했지만 우리라는 범주에 나의 아이만 제외된 느낌이었다.


결혼하려고 첫인사를 갔을 때 어머니의 눈빛이 영 탐탁지 않다는 걸 알아챘지만 자신의 손주는 예뻐하실 줄 알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선물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다. 친정 엄마는 돈을 버는 족족 외손주를 위해서 쓰는데 남편을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말 그러시는 건지 속앓이만 끙끙 댔다. 시댁에 가서 00가 나처럼 눈치를 보는 게 빤히 보였지만 다행히 아버님이 아이를 좋아하셔서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같이 사는 손주들에게 더 정이 가는 건 당연한 거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미운오리새끼가 된 아들이 짠하고 짠했다. 불행(?)중 다행히도 외탁 99프로였던 아이는 열 살을 전후로 아빠의 유전자가 발현되고 있다. 동그란 눈망울은 점점 날카롭게 변하고 있고 곰돌이 같던 얼굴형도 볼살이 빠지며 길쭉해지고 있다. 칠흑같이 까만 스트레이트 머리카락 그리고 피부결과 색은 남편의 것을 그대로 닮아서 멀리서 보면 신랑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하다. 어머~엄마 판박이네라고 말했던 지인들도 이제는 아빠와 똑같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 '아, 이제 다행이다.' 싶다가도 이번에는 내 유전자가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 속상하다. 꼬꼬마 시절의 아이를 바라보던 신랑의 마음이 이랬을까? 변한 얼굴이 못생겨 보여 아가 시절 사진을 보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이제 시댁에 가면 어머니는 우리 00 왔나 하며 반기신다. 얼마 전에는 수학시험에서 상을 받았다고 선뜻 20만 원이라는 거금을 용돈으로 주셨다. 손주들 중에서 공부로 상을 받은 아이는 처음이라서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드디어 녀석이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되었다. 감사하다는 전화를 드리니 “네가 잘 키워서 의사 만들어라.”라는 말을 하신다. 우리라는 범주에 계속 있으려면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어야 하는 건지 마음이 무겁다. 백조가 되는 길이 쉽지가 않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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