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맨 주제곡 부르는 4세 귀요미 그림책 『메두사 엄마』를 읽고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는 나를 어떤 엄마로 생각할까?
“아들! 엄마를 보면 떠오르는 동물이 뭐야?” 녀석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한다.
“토끼.”
“오~ 토끼같이 귀엽다는 거야?”
“아니. 사람들은 토끼가 풀만 먹는 초식 동물이라고 생각해. 근데 사실은 고기도 먹는 잡식이야. 온순하지 않고 사나워.”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하하하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심란했다.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와 조금씩 엇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꾸준히 받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그러다 보면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중인격의 겉과 속이 다른 이미지가 아이에게 각인되어 있는 줄은 짐작도 못했다. 나도 모르게『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의 주인공이 되었다.
10년을 넘게 전업주부로 살면서 꾸준히 육아서를 읽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그림책 속 메두사 엄마는 타인과 교류하지 않고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 머리카락으로 밥을 먹이고 머리카락에 묶어서 바닷속을 걷게 하는 등 오직 두 사람만의 세계를 꾸려 나간다. 나도 그랬다. 어린이집 엄마들과 일절 교류하지 않고 수많은 육아서를 읽으며 책에서 시키는 대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모유수유도 허리와 손목이 다 나가는 줄 모르고 20개월까지 했다. 강박증이 있는 ISTJ형 엄마는 계획한 것은 다 실천해야 찝찝함이 사라졌다. 또래 엄마들과 어울리며 정보를 교류하다 보면 아이를 달달 볶을 게 뻔하다고 나를 믿지 못했다. 아이가 외동이라서 형제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두 명을 키우는 건 자신이 없었기에 모른 척했다. 대신에 엄마를 친구로 생각하도록 열심히 놀아줬다.
하루 종일 책을 읽어주고, 종이접기 책을 보며 박스 세 상자가 꽉 차도록 만들기를 했다. 리뷰가 좋은 보드게임도 바로바로 구매해서 일부러 져주지만 금방 심드렁하는 아이가 보였다. 엄마는 또래 친구가 되지 못한다. 메두사 엄마의 아이는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창밖을 통해 하염없이 바라본다. 우리 아들도 그랬다.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면 다른 아이들과 같이 놀고 싶어서 한참을 망설이며 지켜보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이 주눅 들어 보여서 처음에는 속이 상했지만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만 생각했구나. 아이에게는 친구가 필요하구나…….’ 깨달았다. 원래는 4세까지 가정 육아를 하며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려고 계획했었다. 육아서엔 주 양육자가 36개월까지는 돌보는 편이 좋다고 적혀있었다.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 지켜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육아는 책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메두사 엄마는 아이를 머리카락에서 해방하고 학교를 보낸다. 그리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를 위해 짧게 자른다. 나도 그랬다. 아이를 24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엄마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먼저 말을 걸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낯선 사람과 데면데면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3명 이상 모이면 말없이 듣는 편이지만 아이를 위해서 타인과 교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발음이 잘 안 되어서 의사소통이 오직 엄마하고만 됐었다. (무우~몽마라, 음마~ 다리 아쁘 어브죠) 이런 말을 아무도 못 알아 들었다. 언어치료센터에 데리고 가라는 어른들의 무심한 말에 눈물이 났다. 그런데 등원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말이 또렷해졌다. "엄마 보고 싶었어." 하원하는 길에 들었던 그 한 문장이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신기했다. 또래 친구와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다. 만약 고집을 부려 나랑만 놀게 하고 5세가 돼서 유치원을 보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불안도가 높은 엄마는 똑바로 발음하라고 아이를 하루 종일 닦달했을 게 뻔하다.
‘아이는 온 마을이 같이 키운다.’라는 말이 있다. 식상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잊고 있던 문장이었는데 그림책을 읽고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났다. 아이가 일곱 살일 때 이사를 가게 되어 어린이집 엄마들과 멀어졌다. 원래의 모습이었던 집순이로 돌아가 책만 읽었다. 그게 원인이었을까? 예전의 고립된 메두사 엄마로 돌아간 걸까? 아이의 이모는 나에게 눈 딱 감고 친구 엄마들과 친해지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는 잘 안 해도 친구 이야기는 집에서 한다면서 그렇게 정보교류를 하는 거란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학부모 모임에 들어갔고 단톡방에서 끊임없이 소통 중이다. 사춘기 시작된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따갑다. 토끼 같은 엄마에서 다른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와 다정하게 소통하는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다. 저녁에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에게 물어보련다. 토끼 같은 엄마에서 어떤 엄마로 바뀌었으면 좋겠냐고.
<관련 그림책>
“너는 나의 진주야. 내가 너의 조가비가 되어 줄게.”
무엇이 엄마를 만들까요?
아이 덕분에 메두사 엄마는 두려움을 이기고 세상 밖으로 나와요.
보름달 빛이 유난히 밝은 밤. 두 산파가 메두사의 집으로 바쁘게 향해요. 바야흐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엄청난 일이 시작되었거든요! 산파는 살아 움직이는 메두사의 기다란 머리칼과 실랑이하며 출산을 도왔어요. 마침내 메두사는 딸 이리제를 낳았지요. 이리제의 생활은 모두, 밥을 먹는 일도 첫 발을 내딛는 일도 다 메두사 엄마의 머리칼 속에서 이루어져요. 메두사 엄마는 이리제를 자신의 머리칼 속에 꼭꼭 품어 두지요.
‘이리제. 너는 나의 진주야.’
하지만 이리제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이리제는 학교에 갈 수 있을까요? 메두사 엄마는 이리제와 떨어질 수 있을까요?
-출처 예스24 책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