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마음이 분주해서 미안해
어제 유리 젖병을 깨 먹었다. 분유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밥을 안 먹겠다는 애에게 좀 먹여보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내 손에서 미끄러진 유리 젖병이 와장창 깨졌고 동시에 그 안에 들어있는 분유가 바닥에 무참히 흩어진다. 너무 놀라서 악! 비명이 나왔다. 징징대며 울고 있던 아기도 내 비명에 놀랐는지 울음을 그친다.
아기를 안고서는 쏟아진 분유와 깨진 유리 젖병을 치울 수 없기 때문에 서재에서 재택근무 중이던 남편을 급히 부른다. 하지만 이어폰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잘 활용하는 그는 여러 차례 이어진 나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기술의 발전을 원망하면서 안방에 있는 나는 서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내 목소리가 떨리는 걸 듣고 자초지종을 다 듣기도 전에 달려온다. 하지만 젖병이 깨지는 순간 내 비명을 듣지 못한 그에게서 원망을 거두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남편이 별말 없이 깨진 젖병을 말끔히 치운 뒤에야 나의 마음도 조금 진정이 된다. 사실 치우는 데 몇 분 걸리지도 않는 작은 사고지만 나 홀로 징징대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 보면 그런 작은 일도 크게 서러워진다.
오늘 밤엔 설거지를 하다 분유 포트가 깨졌다. 분유 포트를 씻는 일은 나에게 ‘육퇴’의 상징이다. 아기가 하루 분량의 분유물을 다 먹고 비로소 잠이 들었으니, 분유포트를 설거지하고 내일 일어나면 먹을 물을 다시 끓여두는 것이다. 이것만 끝내면 나는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둘러보거나 일기를 쓰거나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볼 수 있다. 마침내 주어지는 두세 시간의 자유시간이다.
그래서 분유 포트 씻을 땐 마음이 늘 분주하다. 머릿속엔 이걸 씻고 무엇을 하면서 자유시간을 즐길지 계획한다. 딴생각을 해서였을까. 분명히 건조대에 잘 걸어뒀다고 생각한 분유포트가 갑자기 바닥으로 미끄러지며 떨어진다. 와장창. 산산조각이 났다. 내 마음도 산산조각이 난다.
‘내일 우리 아가 맘마는 어떻게 줘야 하지? 이걸 또 언제 다 치우고 잘 수 있을까? 휴...’
원래의 나라면 빨리 치우기부터 했을 텐데 분주한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눈물이 왈칵 난다. 그대로 주방 의자에 털썩 앉아버린다. 이번엔 더더욱 크게 서럽다. 이틀 연속으로 물건을 깨 먹다니 나 홀로 마음만 급한 상태인 것 같아서 그렇다.
마침 지방에 볼일이 있어 내려간 남편에게 또 전화를 건다. 의도치 않게 이틀 연속 무언가 깨졌을 때마다 전화를 한다.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다친 데 없으면 됐다고, 내일은 임시로 정수기에서 나오는 온수로 분유를 타주면 된다고, 분유포트는 빨리 새로 주문하면 된다고 한다. mbti 대문자 T를 소유한 자의 대답답다. 사실 그 말이 맞다. 위로를 받고 싶어 울면서 전화했는데 그가 너무 맞는 말만 해서 짜증 났다가도, 그래 맞지… 하며 묘한 위로를 받는다. 내가 어떤 사고를 쳐도 화내지 않고 늘 차분한 사람을 남편으로 만나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전화를 끊고 다시 혼자가 되어 깨진 유리 파편들을 치운다. 힘을 내보려고 오랜만에 음악도 크게 듣는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주방 바닥을 쓸고 닦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다. 결국 오늘 내가 계획한 자유시간은 깨진 분유포트와 함께 사라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렇게 분주하다. 몸도 마음도 아주 바쁘다. 그러다 보면 젖병도 깨지고 분유포트도 깨지고 자꾸만 망연자실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날일수록 쌔근쌔근 자는 아기 옆에서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잔다. 나는 종일 엉덩이 붙이고 잠시도 쉬지 못했는데, 순진무구하게 자는 아이를 보면 억울할 법도 한데... 오히려 반대다. 나의 종종거림이 너를 편히 자게 했으면 되었다,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는다. 엄마도 자식도 이렇게 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