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배고픔과 같은 '가짜 하고 싶음'
결정을 해야 할 때,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지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보여준다. 나처럼 "모르겠고, 하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이라도 있으면, 설령 망하더라도 일단 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절친한 지인은 반대이다. 그는 자신이 고민하는 이유와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고, 그 요인을 제거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은 마음이 들면 'NO'를 선택한다고 한다. 정답은 없겠으나, 올해로 14년 차. 이 친구와 가까이 지내면서 나와 그, 두 사람의 인생을 펼쳐놓고 그 안의 선택과 결과들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내 친구의 방식이 더 안전한 것은 맞다.
그런데 최근에 깨달은 게 있다. 문제는 '일단 고' 방식 자체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나한테 한 번도 이렇게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너 이거 왜 하고 싶어?"
하고 싶긴 했다. 그건 진짜였다. 그런데 그 '하고 싶음'이 어디서 온 건지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가짜 배고픔이라는 말이 있다. 배고프긴 하다. 그건 진짜다. 그런데 그게 몸이 에너지를 요구하는 허기인지, 스트레스를 달래려는 입의 심심함인지, 습관적으로 뭔가 씹고 싶은 건지—거기까진 안 물어본다. 그래서 먹어도 채워지지 않고, 먹고 나면 이상하게 허전하다.
욕망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긴 하다. 그건 분명하다. 그런데 그 하고 싶음이 정말 나한테서 나온 건지, 불안에서 나온 건지, 남들이 하니까 생긴 건지, "이 정도는 해야 괜찮은 사람 아닌가"라는 기준에서 나온 건지—거기까진 묻지 않는다. 나는 이걸 '가짜 하고 싶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욕망 자체가 가짜라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은 진짜 있었다. 다만 그 출처가 나인지 아닌지를,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진짜 나한테서 나온 욕망은 질감이 다르다.
"왜 하고 싶어?"라고 물으면 논리적인 이유가 안 나온다. "그냥"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설명하려 하면 오히려 어색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가 않는다. 자꾸 생각나고, 안 하면 몸이 근질거리고, 누가 말려도 어떻게든 하게 된다.
반면 출처가 불분명한 욕망은, 며칠 미뤄도 괜찮다. 누가 "하지 마"라고 하면 "그래, 안 해도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막상 해도 별로 기쁘지 않다. 가짜 배고픔으로 먹은 음식이 몸을 채우지 못하듯, 출처 불명의 욕망으로 시작한 일은 삶을 채우지 못한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라"는 말이 있다. 내 친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그건 그냥 안 하고 싶은 거라고. 대신에 왜,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것을 안 하고 싶게 만드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그게 납득이 되면, 후회 없이 흘려보낼 수 있다고. '후회 없이 흘려보낸다.' 이 말이 오래 맴돌았다.
우리는 수많은 고민을 매일 하면서 산다. 다양한 주제로, 종류별로, 정말 온갖 고민을 끌어안고 산다. 그런데 어차피 고민들은 사라진다. 작년 이맘때 했던 고민, 기억이 나는가? 어차피 우린 있는 듯하다가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들인데. 왜 이렇게 아파하면서까지, 나를 괴롭혀 가면서, 이따금씩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줘 가면서 고민을 하는 걸까.
들여다보지 않아서다. "왜 하고 싶어?" 혹은 "왜 안 하고 싶어?"를 끝까지 따라가지 않아서, 고민이 해소되지 않고 그냥 시간에 의해 잊히는 거다. 그렇게 잊힌 고민은 사라진 게 아니다. 비슷한 얼굴로 다시 돌아온다. 나는 오랫동안 그 질문을 건너뛰었다. "하고 싶어?"까지만 묻고, "왜?"는 안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자꾸 지쳤다. 분명 내가 선택한 건데 왜 이렇게 끌려다니는 기분일까, 그게 늘 의문이었다.
출처가 나였으면 끌려다니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 거다. 내가 원해서 가는 길은 힘들어도 끌려가는 느낌이 아니니까. 끌려다녔다는 건, 그 욕망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 한 박자 멈추고 묻는다. "이거, 왜 하고 싶어?" 반대로 자꾸 미루게 되는 일 앞에서는 이렇게 묻는다.
"이거, 왜 안 하고 싶어?"
대답이 바로 안 나와도 괜찮다. 중요한 건 묻는 거다. 그 질문을 끝까지 따라간 욕망만 따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납득이 된 것들은, 후회 없이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랬더니 선택지가 줄었다.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것 같은 일, 하면 좋을 것 같은 일들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삶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붙들고 있던 것들이 사라졌는데, 빈곤해지기는커녕 숨통이 트였다. 출처 불명의 하고 싶음 들을 내려놓으니, 진짜 내 것인 욕망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흘려보낸 것들은, 돌아보며 아파할 필요가 없었다. 왜 보냈는지 알기 때문에.
진짜 하고 싶은 건 참아지지가 않는다. 그러니까 참을 수 있는 것들은, 보내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