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나를 지키는 것조차 미안해할까
얼마 전, 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누가 봐도 잘못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상처를 받은 쪽이었고, 당연히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어요. 사실 전 선하고 착한 성격인데…"
이상했다. 맞서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자기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거지? 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죄가 되는 거지?
그때 깨달았다. 이건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감옥 안에 살고 있다. 화내면 안 되고, 맞서면 안 되고, 상처받아도 티 내면 안 된다. 그래야 "좋은 사람"이 유지되니까. 그래서 누군가 나를 함부로 대해도, 거기에 반응하는 순간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상한 등식이 성립한다. 나를 지키는 것은 착하지 않은 것이라고.
결국 이건 형체 없는 부채감이다. 누구에게 빌린 적도 없고, 원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빚.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출처 불명의 빚. 머리로는 안다. 이렇게까지 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내 편을 드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그런데도 자꾸 미안해진다. 화를 내면 미안하고, 거절하면 미안하고, 내 몫을 챙기면 미안하다.
이 빚, 정말 내가 진 걸까. 아니면 누군가 내게 떠넘긴 걸까. "넌 착해야 해"라고, "넌 좋은 사람이어야 해"라고, 누가 그렇게 믿게 만들었을까.
사실 나도 그랬다. 타인에게 불쾌한 기분을 줄 것 같으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다. 상황을 해결하기 급급했다. 그런데 그렇게 무마했던 상황들은 내 안에 생채기를 남기더라. 내가 나한테 상처를 준 거다. 남한테 주기가 미안해서.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다.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나인데. 물론 정말 내가 잘못한 상황도 있다. 그럴 땐 담담하게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된다. 나 자신에게도 '다음부턴 이렇게 말고 저렇게 하자'라고 말해주면 되는 거다. 그게 전부다.
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넌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물어보고 싶다. 나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까? 자기편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진심으로 타인의 편을 들 수 있을까?
모든 걸 받아주고, 참고, 양보하는 것. 우리는 그걸 착함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갈아 넣은 사람이, 정말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편한 사람이었을까?
착함과 편함은 다르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나를 숨기고, 맞추고, 지우는 것. 그건 선함이 아니다.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방법일 뿐이다. 진짜 선함은 힘에서 나온다.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지킬 수 있다. 스스로 무너지면서 누군가를 안아줄 수는 없다.
그 사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미안하지 않아도 돼. 나를 지키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아직 완전히 믿지는 못해도, 그냥 말해보는 거다.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