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서로 다른 타인 둘이 만나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해 보고자 기꺼이 노력하는 것.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표현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심미적으로 아름다워 보이고자 노력한다.
갖고 싶은 대상이 되고자 한다.
동시에 그도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그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
사랑에 빠진 상대의 눈을 보고 있자면, 스스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자 한다. 나는 당신에게 중요한 무엇이 되고 싶다. 그 욕망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사랑. 아무리 여러 번 손으로 써보고, 입 밖으로 내뱉어봐도 새롭다.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 중에 '사랑'보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말은 없는 듯하다.
사랑. 그 안에 포함된 여러 구성 요소들은 안타깝게도 취사선택이 불가능하다.
만남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시에 이별이 있어야 한다.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하나만 존재할 수가 없다. 이타적인 마음이 있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 동시에 한없이 채워지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그 정돈 내놓으렴', 이런 마음은 아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장사가 아니겠는가. 내가 상대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 저변에는,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으니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깔려 있는 듯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어야, 타인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 주장에 어떤 그럴싸한 근거나 설득력 있는 부연 설명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대차게 사랑에 실패해 본 사람의, 나름 뼈저린 회고 과정을 통해 나온 결론이다. 철저히 나의 의견이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의 성숙도와 깊이, 유지 기간에 비례하여 그 그릇의 크기가 정해진다고.
왜일까. 사람은 '인식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다. 빛이 반사되고 굴절되어 눈이라는 감각기관에 상이 맺혀야 그것을 정보로서 받아들이고 더듬더듬 알아갈 뿐이다. 외면이 그러한데, 내면은 오죽할까.
나는 나를 인식하는 방법을 십수 년 동안 찾아 헤맨 것 같은데, 그중 하나가 이성애적 사랑이었다.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과 타인의 입으로 전해진 표현들로 나를 인식했다. 그것이 내 존재 증명의 방법론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타자 없이는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알게 되었기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성실히 노력 중이다.
값비싼 물건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봤다. 나는 생각보다 속물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가져보고자 한다. 내 힘으로 번 돈을, 내가 욕망하던 물건을 소유하는 데에 쓰는 그 기분이 좋았다.
운동을 매일 한다. 운동의 목적은 건강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몸을 만들기 위함이다. 처음엔 그랬는데, 내가 나를 괴롭게 하면서 동시에 기쁨을 느끼는 그 과정이 신기하고 좋았다. 내가 나 스스로를 정제하고 조각하는 그 느낌이 좋다. 나의 노력에 의해 육신이, 내가 원하는 형상으로 점차 변해가는 그 과정이 즐겁다.
청소를 매일 한다. 나의 공간을 늘 일정하게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쉽지는 않다. 특히 혼자 살수록,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대충 살기 쉽다. 아무거나 먹고, 아무렇게나 물건을 두고, 되는 대로 생활하기 쉽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평안을 느낄 정도의 단정함과 청결함을 유지하는 건 굉장히 에너지가 드는 일이지만, 그만큼 나를 돌보는 행위가 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의 손으로 나를 만져보는 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에 기뻐하는지, 어떤 상태에서 평온을 느끼는지. 그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안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나는, 상대의 눈에 비친 내 모습으로만 존재를 증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나는 나를 알고 있을 테니까. 그제야 비로소, 상대에게 '무엇'이 되고 싶다는 그 욕망이, 결핍이 아닌 충만에서 비롯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 되기 전에, 먼저 나에게 '전부'가 되어야 한다. 오늘도 나를 사랑한다. 언젠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