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필요한 건 내 삶, 나다움의 회복이었다.
요즘 들어 사람에게 기대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인지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 뻔하기도 했고, 불편해도 참고 관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느라 하고 싶은 말을 삼켰고, 거절해야 할 순간에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그랬나.
남자의 애정. 어른의 보호. 타인으로부터의 따뜻한 관심.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것들을 원했다. 누군가 나를 아껴주기를, 누군가 나를 지켜주기를,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돌이켜보면, 나는 한때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에 사로잡혀 살았다. 나 스스로 혼자서는 제대로 살아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왜 그런 믿음이 내 안에 자리 잡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어릴 때부터 늘 마음 한구석이 공허했고, 무언가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했다.
문제는, 때마다 무언가가 채워졌다는 것이다.
학생 때는 좋은 성적을 받는 것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조직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그렇게 외부의 것들로 내 속을 채워갔다.
환상이었다. 그런 것들로 나를 채울 수 없었다.
성적은 다음 시험이 오면 다시 불안해졌고, 사랑은 끝나면 더 깊은 구멍을 남겼고, 돈과 인정은 아무리 쌓여도 '충분하다'는 감각을 주지 않았다. 채워도 채워도 새어나갔다. 애초에 그릇이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상대에게 맞추느라 내 의견을 지웠다. 관계를 유지하려고 불편함을 삼켰다.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아닌 척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를 깎아내면서 타인의 곁에 머물렀다.
그렇게 얻은 애정은 진짜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지워진 자리에 남은 건, 상대가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진 누군가였다.
30대가 되면서 이질감이 짙어졌다.
겉으로 보면 나는 잘 살고 있었다.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가져왔다. 괜찮은 직장, 나쁘지 않은 연봉, 사랑해 주는 사람,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 바랐던 것들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분명히 원하는 걸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계속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새로운 것들을 찾아 헤맸다. 왜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이렇게 공허한지, 뭐가 잘못된 건지 잘 몰랐다.
'나는 무엇으로 살고 싶은 걸까'
이 질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몇 가지 일들을 겪으며 답을 찾았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오롯한 나 자신으로 살겠다. 나를 잃어가면서 까지 타자로, 타성으로 나를 채우지 않겠다."
타인의 애정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관심받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그것들을 갈구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놓쳐버린 건 다른 무언가가 아니었다. 나였다. 원하는 것들을 손에 넣는 동안, 정작 나는 어딘가에 두고 온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오랫동안 고독을 오해했다. 혼자가 되면 고독해지고, 누군가와 함께하면 고독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 곁에 있으려 애썼다. 그런데 함께 해도 고독했다. 사랑받아도 외로웠다. 그제야 알았다. 고독은 '혼자일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고독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상태값이다. 아무리 좋은 관계 안에 있어도, 결국 나는 나로서 홀로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건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애정으로 메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답은 고독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고독을 직면하는 것이었다.
니체가 말한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는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독이라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라. 다만 빈손으로 가지 말고, 온전히 네 것인 사랑과 창조를 가지고 가라. 나다움의 회복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다.
고독을 피하려고 나를 지우는 대신, 고독 안에서도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을 쌓아가는 일. 타인에게서 빌려오지 않아도 나를 지탱할 수 있는 내 것을 만드는 일.
그래야 비로소, 누군가와 함께할 때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이제 이런 것들은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남자의 애정도, 어른의 보호도, 타인의 따뜻한 관심도—그것들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들을 위해 나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잘못 살았다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주저앉기 싫다. 30년 넘게 나를 지우며 살아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아직 젊고 에너지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 계속해서 나를 찾을 것이다. 진짜 나로 살 것이다.
"단 하루를 살아도 온전히 '나'로 살겠다."
설령 딱 하루만 그렇게 살 수 있게 되더라도, 그래도 그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핑계 대고 싶지 않다. 환경 탓, 사람 탓, 시간 탓. 그런 것들 뒤에 숨어서 나를 미루고 싶지 않다.
기댈 때도 있겠지만, 기대면서 나를 잃지는 않겠다. 사랑하겠지만, 사랑 때문에 나를 깎아내지는 않겠다. 함께하겠지만, 함께하기 위해 나를 지우지는 않겠다.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솔직하게 살겠다. 이 삶의 끝까지 나로 살겠다.
이것은 2026년을 시작하는 나의 다짐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사랑 고백이자,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