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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일하고 크게 인정받는 스킬

가시적 성과뿐 아니라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by 최지현

"다른 매니저들이 문팀장이랑 일하기 무섭다고 하네요. 협업하기 너무 힘들다고요."

작년 말, 상사가 나를 따로 불러 전해준 동료들의 날것 그대로의 평가였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내가 회사에서 '일은 잘하는데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퍼포먼스는 좋았다. 맡은 프로젝트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몇몇 임원들에게 꽤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난 일하는 게 너무 힘들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효율만 추구했고, 불필요한 회의를 싫어했고, 내 속도를 못 따라오는 사람들을 답답해했다. "왜 이렇게 간단한 걸 복잡하게 생각해?" "그냥 빨리 결정하고 진행하면 되잖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작년 말, 회사 전체 상품의 전략 기획 리드를 맡게 되었다. 이 업무가 나에게 어려운 이유는 딱 하나였다.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마케팅팀, 개발팀, 기획팀, CX팀, 디자인팀... 모든 부서의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포지션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망했다. 기존의 내 방식으로 하면 정말 다 망한다.

먹고살아야 했다. 고상한 자아성찰이 아니라 그냥 생존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단 나이스한 척이라도 해보자.


"좋은 의견이네요."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속으로는 답답해하면서도 이런 말들을 억지로 내뱉었다. 회의에서 끝까지 들어주려고 했고, 내 의견을 밀어붙이는 대신 상대방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말했다.

그런데 척을 하다 보니까, 점점 진짜 그런 태도가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갔다. 진짜로 그들 말에 귀 기울이게 되었고, 진짜로 우리가 한 팀이 되어 뭔가 괜찮은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직 전체가 우리를 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문제 해결사", "저 팀이 들어가면 일단 중박은 친다" 같은 말들이 들려왔다. 내 실력은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실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일이란 애초에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데일 카네기는 이미 1930년대에 이 진실을 꿰뚫어 봤다. 하버드, 카네기공과대학, 스탠퍼드 대학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그는 말했다. "기술적 지식이 성공에 기여하는 비율은 15%에 불과하고, 나머지 85%는 인격과 다른 사람을 다루는 능력에 달려 있다."


85%.

그런데 우리는 15%에만 목매고 살아왔다.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혼자 문제를 푸는 능력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의 본질은 다르다. 아무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천재 개발자도 기획자 없으면 뭘 만들지 모르고, 뛰어난 마케터도 영업팀 없으면 고객에게 닿을 수 없다.


진짜 실력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일할 때 더 나은 버전의 자신이 되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 옆에 있으면 사람들은 더 창의적이 된다. 더 적극적이 된다. 더 용기를 낸다. 마치 그 사람이 주변 사람들의 숨겨진 잠재력을 깨우는 인간 터보 엔진 같다.


반대로 능력은 있지만 태도가 나쁜 사람 옆에서는? 다들 위축된다. 창의성이 마른다. 도전 의식이 사라진다.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현대의 모든 일은 설득이다. 보고서를 쓰는 것도 상사를 설득하는 일이다. 코딩하는 것도 사용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기획안을 만드는 것도 시장을 설득하는 일이다.


그런데 설득은 논리만으로 되지 않는다. '관계'로 된다. 사람들은 당신이 똑똑해서 따르는 게 아니라 당신을 믿기 때문에 따른다. 당신과 함께 뭔가 좋은 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느끼기 때문에 따른다.

이게 바로 태도가 실력인 이유다. 그런데 이게 정말일까? 실제 데이터를 찾아보니 놀라웠다. LinkedIn에서 4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직력, 팀워크, 문제해결, 커뮤니케이션 같은 소프트 스킬을 가진 사람들이 11% 더 빨리 승진한다는 거였다. TalentSmart의 연구에서는 높은 감정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연간 약 4,000만 원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결과도 나왔다. 관리자들의 솔직한 답변도 인상적이었다. 무려 75%가 직원의 승진이나 연봉 인상을 결정할 때 감정지능을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최고 성과자의 90%가 높은 감정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결국 내가 우연히 발견한 건 비밀이 아니었다. 이미 검증된, 아주 명확한 경제 법칙이었다.

그럼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첫째, 문제와 함께 해결책을 가져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대신 "이걸 먼저 해보고, 안 되면 저 방법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 불안을 증폭시키지 않고 안정감을 주는 사람.


둘째,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내 생각엔..." 대신 "그 아이디어 좋은데, 여기에 이것만 더하면 어떨까?"라고 말하는 사람. 혼자 돋보이려 하지 않고, 함께 빛날 방법을 찾는 사람. 제로섬 게임을 윈-윈 게임으로 바꾸는 사람.


셋째, 에너지 기여자가 되어야 한다. 회의실 분위기를 읽고 적절한 텐션으로 조절하고, 막막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믿음을 전염시키는 사람. 실패해도 "이것도 배움이다" 마인드셋으로 팀의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는 사람.


결국 '적당히 일하고 크게 인정받는 스킬'의 정체는 이것이었다. 혼자 200% 하려고 발버둥 치는 대신, 함께 할 때 모든 사람이 더 나아지게 만드는 능력. 지금 나는 회사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는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한숨부터 나왔는데, 이제는 '또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기겠네' 하며 기대가 된다. 같은 회사, 같은 일, 하지만 완전히 다른 인생이 되었다. 진짜 실력자는 자신이 없어도 일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있으면 팀 전체의 능력치가 끌어올려지는 승수 효과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도'는 엄청난 역량이며, 한 번 갖게 되면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이 모든 걸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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