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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도피가 아닌 도약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전략적 퇴사 가이드

by 최지현

20대, 도망치기의 달인이었던 시절


20대 때의 나는 감정적으로 퇴사를 결정하는, 도망치기의 달인이었다. 문제와 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으로 피하는 것이 더 쉬웠고, 현실과 직면하는 것보다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이 더 매력적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 컬렉터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퇴사'라는 것의 진짜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수단 정도로만 여겼달까. 내가 떠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조직에는 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이 선택이 내 커리어에서 성장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고, 길고 어두운 터널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나에게 퇴사란 그냥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것'이 아니었다. 내 나름의 '업그레이드'였다. 더 많은 돈을 받거나, 해보고 싶던 직무를 경험하거나,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 특히 스타트업 씬에서는 이직이 자유롭고 유연한 문화였으니까, 더욱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잘 안 맞으면 다른 곳 가지 뭐' 정도의 마인 드였달까. 그런데 몇 번의 이직을 반복하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조직을 가도,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이나 문제들이 다 비슷했다. 상사와의 갈등, 업무 스타일의 차이, 조직 내에서의 소통 문제... 회사는 바뀌었는데 패턴은 똑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들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 '이유들'의 정체가 보인다. 이유가 있어서 퇴사를 결심한 게 아니라, 퇴사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명분을 억지로 만든 거였다. 마음이 이미 결정해 놓고, 머리가 뒤늦게 합리화를 해준 거였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의 뼈아픈 경험을 해야 했다. 돈을 더 많이 준다는 말에 이끌려 이직했는데, 막상 들어가니 말이 바뀌고, 일은 너무 많고, 궁극적으로는 대표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어떤 조직이든 대표자의 그릇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표의 그릇이 간장종지만 한데 나는 대접만 한 그릇이었던 거다. 결국 4개월도 안 되어서 퇴사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내 이력서나 포트폴리오에 그 회사를 넣지도 않는다.


지금은 30대가 되었다. 퇴사를 둘러싼 변수들이 복잡해졌다. 20대 때처럼 "일단 해보자" 식으로는 안 된다. 월세, 대출, 부모님 용돈, 미래에 대한 불안... 감당해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동시에 어느 정도 쌓인 경력과 네트워크, 그리고 "내가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정도는 아는 자기 이해도 있다. 이런 실패를 겪고 나서야 퇴사의 진짜 의미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불편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의 문제였던 거다. 이 깨달음이 나를 바꿨다. 더 이상 "여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저기가 좋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정이 아닌 분석으로, 도피가 아닌 전략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거다.


감정적 퇴사는 현재의 불만족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변화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회사를 바꿔도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왜냐하면 같은 사고방식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어디서든 문제를 만들어내고, 그 문제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쉽다. 감정과 이성을 구분하는 것, 도피와 전략을 나누는 것이 그렇게 간단했다면 세상에 후회하는 퇴사는 없을 테니까. 문제는 인간의 뇌가 생각보다 교묘하다는 거다. 감정적 결정을 내리면서도 스스로는 이성적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퇴사가 '도약'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정과 판단을 분리하는 것이다. 퇴사 생각이 들 때, "지금 나는 화가 났다", "지금 나는 좌절감을 느낀다"라고 명확히 인식하라. 감정을 인정하되, 그것이 결정을 좌우하게 두지는 말자. 감정은 중요한 신호지만, 신호를 받았다고 바로 행동하면 안 된다.


그다음, 스스로에게 이 질문들을 던져봐라: "이 문제가 정말로 조직 내에서 해결 불가능한가?", "5년 후의 내 모습에서 봤을 때 지금이 전환점인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비용이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비용보다 정말 효율적인가?", "충분한 준비와 대안이 있는가?" 이 질문들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니체의 질문을 빌려보자. 이 퇴사 결정을 무한히 반복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진짜 도약이라면, 그 과정이 힘들어도 기꺼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고통회피가 아닌 성장추구여야 한다는 뜻이다. 도피는 과거의 나를 끌고 다니지만, 도약은 미래의 나를 창조하니까.


30대에게는 특히 추천하고 싶은 전략이 있다. 사이드잡을 통한 이성적 검증 과정이다. 현재 직장에서 월급은 꼬박꼬박 받으면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시도해 보는 것. 전업으로 뛰어들기에는 리스크가 크지만, 그렇다고 계속 현상유지만 할 수는 없을 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온라인 클래스를 만들거나, 프리랜싱을 하거나, 작은 사업을 해보는 사람들. 다양한 '찍먹'을 통해 자신이 정말 어떤 일을 할 때 자신감이 생기는지, 그게 시장에서 실제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감정적으로는 "이 일이 재미없으니까 그만두고 싶어"가 되지만, 이성적으로는 "일단 사이드로 해보면서 검증한 다음 결정하자"가 되는 거다. 이제는 이런 신중함이 필요한 나이다. 30대부터는 더 이상 감정적 선택을 할 여유가 없다. 연차가 쌓이고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미치는 파장은 더 커지니까.

아이러니한 건, 퇴사에 대해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면, 굳이 퇴사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거다. 정말 준비된 사람은 어디서든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내니까. 떠밀리듯, 도망치듯 하는 퇴사가 아니라, 나의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 하나의 선택지 중 하나가 퇴사일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략적 퇴사는 때로 필요하다. 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한 곳에만 머물러 있으면 상대적으로 뒤처지게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는 거다.


전략적 퇴사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감정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결정이어야 한다. 둘째, 도피가 아닌 도약이어야 한다 - 무언가에서 벗어나려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려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충분한 준비와 대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상유지만 할 수도 없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도 때로는 가장 큰 리스크가 될 수 있으니까. 결국 중요한 건 이거다. 퇴사는 도피가 아닌 도약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당신의 인생이고, 당신이 선택해야 한다. 다만 그 선택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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