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노동'을 마주했을 때의 현실적 대응방안
이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번아웃은 아니다. 지쳐서 쉬고 싶은 게 아니라, 쉬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공허함. 일하다 느끼는 '현타'라는 것은 대게 이렇게 찾아온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자꾸만 나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이상한 건, 회사를 다니는 게 딱히 싫은 건 아니라는 거다. 월요일 아침이 지옥인 것도 아니고, 상사가 미친놈인 것도 아니다. 그냥 텅 빈 느낌. 일을 잘 끝내도, 뿌듯함보다는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바쁘고 힘들게 일하고 나면 성취감이 느껴졌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 물론 일이 너무 바쁠 때는 잠깐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밀려 있으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뭔가를 끝내고 숨 돌리고 나면, 혹은 '수고했어요'라는 주고받은 다음 내 자리로 돌아와서 앉으면, 다시 불쑥 찾아온다. 성과가 나쁘지 않은데도 뭔가 빠진 느낌. 인정받았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
퇴근길 지하철에서 퇴사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사직서 던지고, 짐 싸고, 문 닫는 장면까지는 시원하다. 근데 다음 달 카드값, 월세, 다가오는 부모님 생신날이 떠오른다. 그렇게 달콤한 퇴사의 꿈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어둔다.
'나는 왜 퇴사하고 싶은 걸까?'
돈이 적어서? 아니다, 나쁘지 않다. 상사가 싫어서? 딱히. 동료가 별로? 그것도 아니다. 워라밸? 요즘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그럼 대체 뭐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불편한 답이 왔다. 이 회사가 싫은 게 아니었다. 여기서 하는 '일'이 나랑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였다. 내가 아니어도 될 것 같은 일. 누가 해도 똑같을 것 같은 일. 그걸 매일 하고 있다는 자각. 그리고 깨달았다. 이건 회사를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일'의 정체 - 가짜 노동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 누가 해도 똑같은 일.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은 이러한 일을 '가짜 노동'이라고 정의했다. 없어져도 아무도 눈치 못 챌 일. 바쁜 척은 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 일. 솔직히 떠올려보자. 하루 업무 중에 이런 게 얼마나 있는가. 결론이 이미 정해진 회의에 2시간 앉아 있기. 아무도 안 읽을 보고서를 '근거 자료'라는 이름으로 만들기. 윗사람 기분 맞추기 위한 야근. 실질적 효과는 없지만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일들.
예전에는 이런 일을 해도 크게 의문을 품지 않았다. 바빴으니까. 다들 그러니까.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AI가 이 질문을 앞당겼다. ChatGPT가 30분이면 뽑아내는 보고서를 나는 이틀 동안 붙잡고 있다. 그걸 알면서 하고 있다. 이 자각이 괴롭다. 열심히 하면 의미가 생기던 시대는 끝났다. 열심히 한다고 의미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가짜 노동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예전엔 몰라서 버텼다면, 지금은 알면서 버텨야 한다. 그게 더 힘들다.
가짜 노동 앞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
가짜 노동을 자각하면 뭘 할까? 떠나거나, 버티거나. 보통은 이 두 가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요즘은 제3의 선택지가 있다.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실제로 퇴사하진 않는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퇴사한 상태. 주어진 일만 딱 하고, 그 이상은 안 한다. 야근? 안 한다. 자발적 업무? 안 맡는다. 승진 경쟁? 관심 없다. 칼퇴하고, 주말엔 연락 안 받고, 회사 일에 감정을 쓰지 않는다. 솔직히, 똑똑한 전략처럼 보인다. 가짜 노동에 영혼을 갈아 넣지 않으면서 월급은 꼬박꼬박 받는다. 에너지를 아껴서 퇴근 후 내 삶에 쓴다. 워라밸의 완성형 아닌가?
그런데 이것도 오래 하면 이상해진다. 일에서 의미를 못 찾는 건 여전하다. 거기에 성장도 없고, 성취도 없다. 매일 출근은 하는데,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감각이 없다. 시간만 흐른다. 조용한 사직의 함정이 여기 있다. 가짜 노동에 감정을 쓰지 않는 건 좋은데, 진짜 노동에도 감정을 안 쓰게 된다. 일 전체가 그냥 "시간 때우기"가 되어버린다. 회사에 다니고 있긴 한데, 다니는 건지 버티는 건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떠나든, 버티든, 조용히 사직하든.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다. 그래서 선택지를 고르는 게 아니라,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현실적 대응 - 가짜 노동과 관계 맺는 법
아주 솔직하게 나의 생각을 말하겠다. '가짜 노동'은 조직에 속해 있는 대가로 내는 세금이다. 세금을 낼 때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아깝긴 하다. 하지만 그게 시스템이라는 걸 안다. 사회에 속해 있으면 세금을 내듯, 조직에 속해 있으면 가짜 노동을 한다. 없앨 수 없다. 가짜 노동이 괴로운 건 사실 그 일 자체 때문이 아니다.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의미 없는 회의에 앉아서 '이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면 괴롭다. 하지만 '이건 그냥 세금이지'라고 받아들이면, 에너지 소모가 줄어든다. 다만 세율은 관리할 수 있다. "가짜 노동을 어떻게 없앨까"가 아니라, "나는 얼마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자기만의 기준을 정해두면, 현타가 올 때마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아낀 감정 에너지로 진짜 중요한 걸 하면 된다. 일 안에서든, 일 밖에서든.
그래도 떠나야 할 때
물론, 세율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이 있다. 가짜 노동 비율이 나의 한계치를 넘고, 그것을 줄일 협상력도 없고,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때. 출근길에 몸이 무겁고, 퇴근해도 회복이 안 되고, 일 밖에서 뭔가를 할 에너지조차 남지 않을 때. 그때는 떠나는 게 맞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게 있다. 현타가 온 직후에 결정하지 마라. 현타는 감정의 피크다. 그 순간에 내린 결정은 대부분 후회한다. 최소 3개월은 버텨보고, 그래도 세율이 감당 불가면 그때 떠나도 늦지 않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반드시 점검하자. 나는 이 회사를 떠나는 건가, 이런 종류의 일을 떠나는 것인가. 전자라면 이직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후자라면 이직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나는 가짜 노동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가?"
가짜 노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딜 가든 있다. 퇴사한다고 없어지지 않고, 버틴다고 괜찮아지지 않는다. 그건 세금이다. 없앨 수 없다. 다만 세율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게 다를 뿐이다. 자기만의 기준을 정하자. 감당 가능한 세율 안에 있다면, 감정을 아끼고 에너지를 다른 데 쓰자. 세율이 기준을 넘으면, 그때 떠나자. 도망이 아니라 전략으로. 현타는 적신호가 아니다. 내 노동의 세율을 점검하라는 신호다. 그 신호를 무시하면 같은 자리에 머문다. 신호에 응답하면, 어디에 있든 한 발짝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