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중지'를 통해 생각과의 거리를 두자
오늘은 당신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과 고민들이 자리를 잡고 비키지 않는 중인지 묻고 싶다. 하루라도 고민 없이 살 수는 없는 걸까? 하나의 걱정거리가 해결되면, 그게 끝나기 무섭게 바로 다음 고민이 줄지어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다. 아무래도 우리 머릿속엔 '고민 전용 의자'가 있나 보다. 의자 개수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작년 오늘, 당신을 괴롭히던 고민이 뭐였는지 떠올려보라. 기억나는가? 아마 안 날 것이다. 기껏해야 "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 하지만 그때 당신은 밤잠을 설치고,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고민은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가장 휘발성 높은 것이다. 의자를 차지한 고민은 "나는 심각하다, 나는 중요하다, 나를 당장 해결해야 한다"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몇 달 뒤면 그게 뭐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더 기가 막힌 건 의자는 절대 비지 앉는다는 것이다. 하나가 일어서면 다음이 앉는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괴롭히는 그 생각, 석 달 뒤면 당신은 그게 뭐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년 이맘때 또 다른 고민이 그 자리에 앉아있을 것이다. 또 소리칠 것이다. "나는 심각하다, 나는 중요하다." 릴레이처럼.
생각은 어디까지나 머릿속 환상일 뿐이다. 그것이 실제로 '실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실재처럼 느껴진다. 심장은 빨리 뛰고, 손은 차가워지고, 밤잠을 설친다. 생각은 환상인데, 그것이 만드는 고통은 진짜다. 왜 우리는 환상을 진짜처럼 믿고 휘둘리는 것일까. 뇌가 환상과 실재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착각이 우리를 괴롭게 만든다.
뇌는 파도를 만드는 기계다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뇌가 자동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심장이 알아서 뛰듯, 뇌는 알아서 생각을 만든다. 오히려 할 일이 없을 때 더 많이 만들어낸다. 신경과학자들이 발견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는 흥미로운 이름을 가졌다. '디폴트'. 기본값. 이 네트워크는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멍 때릴 때 활성화된다. 그리고 자동으로 생각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상상하고, 정체성을 되묻고, 타인의 의도를 계속해서 추론한다.
당신이 깊은 바다리면, 생각은 그 표면의 파도다. 파도 없는 바다는 없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고, 잔잔한 날에도 물결은 일렁인다. 이것이 바다의 본성이다. 뇌도 마찬가지다. DMN이 작동하는 한 생각이라는 파도는 끊임없이 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너무 확대해석 하는 경향이 있다. 파도를 바다 전체로 착각한다. 큰 파도가 치면 바다 전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도는 표면의 현상일 뿐이다. 깊은 곳은 여전히 고요하다.
파도에 휩쓸리는 뇌, 파도를 보는 뇌
어떤 생각 우리를 완전히 삼켜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생각일 뿐'이야 라고 스스로를 안정시켜 봐도, 몸과 마음은 진짜 위험에 처한 것처럼 반응한다. 그 이유는 편도체 활성화 때문이다. 편도체는 뇌의 깊숙한 곳, 아몬드 모양의 작은 기관으로, 우리 몸의 '위협 감지 레이더 역할'을 한다. 무언가 위험하다 싶으면 0.3초 만에 전신에 경보를 보낸다. 심장이 뛰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근육이 긴장한다. 싸우거나 도망치라고.
문제는 우리 편도체가 실제 호랑이와 상상 속 호랑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 일이 잘못되어서 내가 망하면 어쩌나'라는 생각도 편도체에게는 눈앞의 호랑이와 같다. 그래서 생각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몸이 그렇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게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바다의 표면에서 허우적대며 패닉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전두엽이라는 다른 무기가 있다. 이마 바로 뒤, 뇌의 최전방에 위치한 전전두엽은 이성적 사고와 자기 관찰을 담당한다. 전전두엽이 깨어나면 당신은 말할 수 있다. "잠깐, 이것은 생각일 뿐이다. 진짜 호랑이는 없다." 그러면 편도체의 경보가 점차 잦아든다. 실제로 명상 연구를 보면 숙련된 명상가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전전두엽 활성화는 높고 편도체 반응은 낮다. 그들은 파도를 보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법을 안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당신은 표면에서 허우적댄다. 전전두엽이 깨어나면 당신은 깊은 곳으로 잠수한다. 풍랑이 표면에서 아무리 거세도 깊은 곳은 고요하다. 생각이라는 파도가 아무리 크게 쳐도 당신이라는 깊은 바다는 흔들릴 필요가 없다.
판단 중지 - 파도 아래로 잠수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전전두엽을 깨우고 편도체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판단 중지'는 이것을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나는 실패자다'라고 생각해 보라. 어떤 기분이 드는가. 아마 가슴이 답답하거나 몸이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생각과 내가 하나가 된 상태다. 생각이 곧 나인 것이다.
이번에는 이렇게 말해보자. "내가 지금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조금 멀어진 것 같지 않은가. 이것이 생각과 내가 분리된 상태다. 생각과 나는 다르다. 분리되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적 탈융합'이라 부른다. 거창한 이름이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생각을 '나'에서 떼어내는 것이다.
'이 생각이 진짜인가'라고 묻는 순간, 당신은 이미 생각에서 한 발짝 물러나, 관찰자가 된다. 그리고 '판단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판단 중지'를 시작하면 생각과 싸우지 않게 된다. '이 생각은 틀렸다'라고 저항하는 순간, 편도체는 자극을 받고 전투 모드로 들어간다. 하지만 '판단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인해 저항이 없어지고 편도체도 진정된다.
생각을 실재한다고 믿지 않는 것이 '판단 중지'의 핵심이다. 쉽게 말해서, 생각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굶기는 것이다.'이 생각이 맞다'라고 믿으면 생각에 에너지를 주게 되지만 '판단하지 않겠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나면, 더는 에너지를 주지 않는다. 믿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니 생각은 힘을 잃는다. 판단 중지를 선언하는 순간, 당신은 관찰자 모드로 전환된다. '나는 지금 이 생각을 관찰하고 있다'는 메타인지적 자각이 일어난다. 생각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파도는 계속 인다, 하지만 당신은 바다임을 잊지 말자
골치 아픈 생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살아있는 한 뇌는 계속 생각을 생산한다. 파도는 바다의 본성이므로, 파도는 계속 인다, 하지만 당신은 바다임을 잊지 말자. 생각은 표면의 현상일 뿐, 당신 자체가 아니다. 판단 중지는 생각을 부정하는 것도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파도를 멈추려 하는 것도 파도와 싸우는 것도 아니다. 파도를 파도로 두고 깊은 곳으로 잠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파도는 지나간다는 것을. 작년 오늘의 고민이 지금 기억조차 나지 않듯, 시간이 파도를 잠재워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 굳이 판단할 필요가 없다.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환상에 휘둘릴지, 깊은 곳의 고요를 선택할지는 당신의 몫이다. 파도를 파도로 두고 깊은 곳으로 잠수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