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by 청목

안개꽃!

그 글의 제목은 안개꽃이었다.

열차 통학을 하던 한 남학생이 있었다. 키는 껑쭝하고 얼굴은 그리 잘 생겼다고 할 수 없는 학생이었다.

그는 늘 종착역에서 출발하는 열차에 자리를 잡고 한결같이 책을 읽으며 통학을 했다.

그다음 역쯤에서 또래의 여고생 둘이서 열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 두 여학생은 약속이나 한 듯, 남학생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두 여학생 중, 한 여학생은 여드름 꽃핀 활화산 얼굴에 선머슴아 처럼 생겼고,

다른 한 여학생은 하얀 안개꽃처럼 얼굴이 참 예뻤다.

늘 같은자리에 앉아 서로 마주 보며 날마다 그렇게 학교를 오가면서도 처음 자리에 앉을 때, 한번 올려다

볼뿐 그만이었다. 그리고 곧 책에다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아무도 말을 건네지 못했다.

남학생 입장에서는 예쁜 여학생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을 것이고, 거기다

자기가 말 걸기에는 그 여학생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랬다고 한 번쯤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공연히 말 붙였다가,

"별꼴이야! 주제 파악도 못하고."하고 무안만 당하리라 여겼다.

처음 그렇게 그저 한번 고개를 들어 눈낄을 주는 것이 다였다.

그렇게 훌쩍 세월은 지나 결국 학교를 졸업하고 아쉬움만 남긴 채, 그들은 대학으로, 사회로 나갔다.



그 뒤 10년, 20년 세월이 흘러 그 남학생이 학교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아 어느 시내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는 꽤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어 책을 냈고, 담임을 맡은 아이들에게 자기의 동화책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얼마 후 한 통의 전화가 교무실로 걸려 왔다.


"여보세요? 아무개 선생님이시죠? 혹시 고등학교 때, K에서 J로 열차 통학을 하셨지요?

늘 고개를 떨어뜨리고 책만 읽던 그분 맞지요? 책 속의 사진을 보고 알았습니다."


"아! 예, 제가……. "

"그때 앞에 앉아 가곤 했던 두 여학생 생각나세요? 여드름 많았던 여학생은 저였고요. 안개꽃 같이 가늘고

예뻤던 여학생이 제 친구 '선이'입니다.

선이가 얼마나 선생님을 좋아했는지 아세요? 아무리 선생님이 목석이래도 그러시는 게 아니지요. 어떻게

잠깐도 아니고 그렇게 몇 년을 졸업할 때까지 말 한마디 던지지 않고 책만 읽는단 말이에요!"

대꾸할 사이도 없이 말이 이어졌다.


"그 예뻤던 선이가 지금 암 투병 중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어요. 아마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하네요."


"아…!"

전화기를 들고 있던 그는 숨이 멈추는 듯했다.

그리고 그만 손에 들고 있던 수화기를 책상 위로 떨어뜨렸다.*


위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어느 대학 학보에 실렸던 글이다. 나는 당시 그 글을 참 감동적으로 읽었다.

용기를 내어 학보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 글을 쓰신 분의 주소를 알아내고 곧바로 편지를 썼다.

그때가 마침 연말이기도 하여 연하장 겸 편지를 써보네 드렸다.

그렇게 그 글을 쓰신 '김여울' 선생님과 편지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편지글에서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를 일깨웠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예술의 한 장르인

문학을 하는 행위야 말로 가장 보람 있는 행위이며, 자기 인생을 걸고 쏟아부을 수 있는 가치 있는 행위라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장르에 자기 자신의 열정을 쏟아붓는다면 능히 그 뜻을 이룰 것이다.

단 '자신의 피를 말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선생은 덧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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