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며
등산에 대해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선배와 산행을 함께하곤 했다.
어느 해 여름, 두 선배를 따라 설악산 대청봉(1708m) 산행을 하게 되었다.
‘오색 약수터’에서부터 출발하여 대청봉에 오르는 비교적 가파른 코스였다.
나로서는 그저 겁 없이 따라나섰을 뿐, 그 코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 시작부터
끝도 없이 돌계단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가까운 단거리 산행만을 주로 해오던 터였다.
나의 산행 방법은 일단 힘이 미치는 한 단숨에 올라가 숨이 차거나 지치면 앉아 쉬고, 그렇게 숨을
고르고 쉬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다시 또 올라가는 것이다.
설악산 대청봉, 그저 하늘로 향한 듯 오르막 돌계단이 계속 이어지는가 하면 큰 산 봉우리가 그러하듯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어 그렇게 반복하다가 때로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행길이었다.
내가 서둘러 앞서가다 얼마 못 가고 다시 주저앉아 있는 나를 보고 두 선배는,
“처음부터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아주 천천히 자기 페이스대로 그저 한 발, 또 한 발 옮겨 놓으라”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두 분은 '산행의 기본'을 나에게 일깨워 주었고 실제로 보여주었다.
더구나 나로서는 오로지 정상의 정복(?),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그 정상에 오를 것인가에 몰두했고, 잠시 잠깐 쉴 때는 널브러지듯 일단 배낭도 내려놓고, 어디든 걸터앉아 쉬어야 했다.
그렇게 단숨에 올라가려고 하면 쉬 지치고 말아, 그러니 발 빠른 단기전으로 하기보다, 힘을 알맞게 안배해 절대 무리하지 말고 그러면서도 끈기 있게 장기전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두 선배는 간식이나 물을 마실 때도 거의 서 있는 채로 휴식을 취했다. 중요한 건 산행 속도가 나처럼 빨랐다 느렸다 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발을 옮긴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 혼자였다면 어디쯤에서 그저 주저앉아 지친 나머지, 아예 산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돌계단 길을 오르기도 했지만 때로는 잘 우거진 나무숲이 햇빛을 가려주어 시원한 그늘막이 되어 주기도 했다.
아침 식사는 미리 준비해 온 김밥으로, 점심은 샌드위치로 해결하며 4∼5시간을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그래도 끝은 있었다. 그늘막을 만들어 주었던 숲이 걷히며 하늘이 활짝 열린 듯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고산지대 들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예쁘게 생긴 들꽃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제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정상에 이를 것인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앞서가던 두 선배는 거기서부터 아주 여유롭게 길가 여기저기 피어 있는 들꽃들을 눈여겨보면서,
“아, 이 꽃은 범꼬리, 저 꽃은 바람꽃이야!” 꽃 이름을 대며 여유롭게 폰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
오로지 산의 정상을 향해 서두르던 나는 뒤돌아, 그처럼 여유롭게 산에 오르는 두 선배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래, 맞아!’ 그저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래로 들꽃을 내려다보며 한발 한발, 발을 옮길 적마다 바로 산행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길도 바로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