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부 재심(再審)의 긴 여정
8. 무죄(無罪) 판결 요지
이 법원에 새롭게 제출된 증거인 문 모, 최 모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 육군 2군단 사령부 작전 참모처의
사실조회회신, 이 모의 확인서, 국가인권위원회 2003년도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등을 기초로 하여 공소 사실에 관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위와 같은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이 적진으로 도주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공소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
⓵1969년 5. 4. 03:05경 제15사단 수색중대 소속으로 보초 근무 중이던 최 모 일병이 피고인을 발견하여 부대 선임에게 피고인을 인계하여 피고인은 제15사단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
② 피고인은 며칠 후 제102 보안부대(춘천 보안대)로 옮겨 내무반에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문○과 함께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내무반에서 잠을 재웠던 사실,
③ 피고인에 대하여 1969. 5. 7. 발부된 구속영장에는 구속할 장소가 제21헌병중대 영창으로 기재되어 있고, 1969. 5. 7. 08:30경 위 구속영장이 집행되어 제2야전구치소에 인치 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 사실,
④ 피고인은 1969. 7. 26. 검찰관의 이감지휘에 따라 제2야전구치소로 이감 수용된 사실,
⑤ 1969년 당시 피고인과 함께 수감되었던 이○우는 피고인이 무릎을 많이 다쳐 다리를 저는 모습과 피고인의 몸에 있던 멍 자국을 보았고 피고인으로부터 수사관들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 사실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은 적법한 미결 수용시설도 아니고 구속영장상의 인치장소나 구속 장소로 기재되어 있지도 않은 장소인 내무반에서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불법 구금되는 등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이로 인하여 수사기관에서 일부 자백하는 진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설령 피고인이 재심대상사건 항소심 법정에서 적진으로의 도주 의사가 있었다고 자백하는 취지로 진술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임의성이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한 자백으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 공소사실에는 피고인이 추위와 기근으로 민가를 찾던 중 제15사단 수색중대 제1소대 본부에 접근하다가 보초 근무 중인 일병 최 모 일병에게 발견, 검거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위 최 모는 이 법정에서, 자신이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군사도로를 걸어 초소 쪽으로 다가와서 ‘누구냐?’고 물어보았고 이에 피고인이 소속부대와 이름을 말하며 길을 잃었다고 해서 피고인을 데리고 내무반으로 가서 선임들에게 인계하여 주었을 뿐 피고인을 체포한 사실이 없으며 이 과정에서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따라왔다고 진술하였던 바, 피고인이 적진으로 도주하려고 하였다면 남방 한계선을 고작 150m 남겨둔 상황에서 스스로 군부대를 찾아가 최 모 일병을 따라 들어갔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피고인으로부터 압수된 물건 중 나침반이나 지도 등 길을 찾기 위한 물건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자살을 하려고 나왔다가 포기하고 부대로 복귀하려던 중, 길을 잃어 헤매다가 제15사단 수색중대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피고인의 진술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9. 결말
그렇다면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무죄(無罪)’를 선고하고, 형사 소송법 제440조 본문에 따라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재판장 판사 ○○○ 외 2명.
“무죄(無罪)-!”
재판장은 그간의 상세한 근거와 증빙 자료, 타당한 법적 이유를 들어 최종 결론으로 나온 ‘무죄!’라는 말이 법정을 울려 퍼졌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박은성’씨는 재판장이 최종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기쁨의 환호성 대신 ‘꺼이꺼이’하는 흐느낌에서 마치 통곡이라도 하듯 울음을 터뜨렸다.
“무죄!” 하는 재판장의 무겁고 엄숙한 목소리의 울림도 컸지만, 뒤이어 그보다 더 크게 가슴을 울리듯 통곡의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그것도 1969년 6월 30일 최초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실로 반세기를 넘긴 51년 만의 일이었다.
어떻게 지금에 이르러 당사자인 그가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참 만에야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는 잠시 동안 마음을 추스른 다음,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던지 법관과 법정 정면을 향해 모자를 벗고, 정중히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의 가족들과 방청객, 취재진 등,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인간 승리,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 ※ 오마이 뉴스, 변상철기자, 기사 내용 일부 인용 및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