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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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재심(再審)의 긴여정

by 청목

6. 내가 뭘 어떻게 도우면 되죠?


맨 처음 박은성 병장을 검거했다는 ‘최 모 일병’의 거주지를 알아보기 위해 법원에

‘최 모 일병 주소지 사실 확인서’를 냈다. 다행히 법원은 필요성을 인정하여 최 모 일병의 주소지를 확인해

주었다. 이제 그 주소지대로 최 모 일병(이하 최 모씨)을 찾아가 그 증언을 부탁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 이곳 주소지를 찾아간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만일 못 만나면 어떻게 하지?”

“그럼 혹시 집에 안 계실 수도 있으니 ‘최 모 씨’에게 만나 달라는 부탁이 편지를 직접 써서 전달해 보면 어떨까요?”

박은성 씨는 그게 좋겠다며 근처 카페에 들어가 노트에 직접 호소의 편지를 작성했다.

그 편지에는 50년 전의 일로 억울한 삶을 살았던 그의 한을 풀고 싶다고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으로 꼭 도와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쓴 두 장짜리 편지를 근처 마트에서 구입한 편지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회기역 입구에서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최 모씨 집으로 향했다. 빌라가 많이 있는 동네를 걸어가

전동 2동 파출소 앞에 다다랐다. 일단 주소가 맞는지 확인했다.


“바로 이 집이네요.”

집은 4층 건물의 빌라였다.

그는 잠시 큰 숨을 들이쉬고 빌라 현관문을 밀었다. ‘최 모 씨’ 거주지인 3층에 올라갔을 때 더욱 긴장되었다. 잠깐 숨을 고르고 초인종을 눌렀다. 처음에는 인기척이 없어 다시 누르려고 하니 집안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안에서 들리는 중년의 남자 목소리가 났다. 다행히 그가 집에 있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누구신데 그러시지요?”라며 문이 열렸다.

“저는 박은성이라고 합니다. 최 모 씨가 맞나요?”

“내가 최 모 맞는데 누구신데 찾아오셨어요?”

“예전에 전방 화천에서 군대 생활 할 때 제가 만났거든요. 실례인 줄 알지만 좀 차분하게 앉아서 이야기

해도 될까요?

“아! 그래요! 들어오세요.”

최 모 씨는 그 옛날 젊은 시절 군대생활 이야기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우리 일행을 안으로 들였다.

부엌에서 부인인 듯 보이는 사람이 막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가 낯선 일행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거실에서 마주 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최 모 씨의 아내는 커피를 내놓으며 곁에 앉았다.

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과거 사건발생부터 현재 재심 신청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한참을 듣고 있던 그가 별다른 동요 없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고생 많으셨겠네요.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 당시 있었던 일, 그대로 증언을 해주실 수 있는가 해서 부탁하러 왔어요.

내가 북한으로 탈출하려다 당신에게 검거된 것은 아니잖아요?”


박은성 씨의 이 말에 최 모 씨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검거는 무슨……? 내가 보초근무 서고 있는데, 누가 초소 문을 두드렸고, 깜짝 놀라서 문을 열어줬던 것은

확실해요. 이제 생각하니 조금씩 기억이 나네.

맞아요! 여기 이 사람이 거기 서 있었어요. 그래서 내무반으로 데리고 갔지요. 그리고 '뭐, 어디 부대를 가려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길을 물어봤던 것 같아요.

내가 신참이고 충청도 단양 사람이라 어디가 어딘지 나도 잘 몰랐어요. 그래서 가까이 있는 내무반으로 이 사람을 데려갔지요. 데리고 가니까 고참들이 놀라서 잠에서 깨고 그랬어요. 그래서 고참들 한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 사람을 내무반에 앉아 쉬게 했어요.”


“그때 나를 밧줄로 묶거나 수갑을 채우거나 하지도 않았죠?”


“묶기는 뭘 묶어요. 자유롭게 앉아있게 해 줬는데. 길을 잃었다는데 뭘 묶어요. 내무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난 다시 초소로 근무하러 나왔어요. 그게 다예요.”


박은성 씨는 그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아∼!”하는 한숨을 길게 쉬며, 그는 이제야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비로소 밝은 희망의 불빛을 보는 듯했다.


“그때 내가 보안대에 끌려가서 얼마나 맞았는지 몰라요. 정말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니까.”

“아! 그래요? 나도 그 후, 사단 보안대에 한 두 차례 끌려갔었어요. 가서 보안대 수사관들이 묻는 대로 ‘예, 예’하고 대답했죠. 예전에는 보안대 수사관들 앞에서 무엇을 부인(否認)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얼마나 무서운데, 그냥 ‘예, 예’ 했죠, 그리고 나중에 서울 필동에 있는 법원에도 갔었어요.”


“맞아요. 그때 내가 본 기억이 나요! 법원 복도에서 나 만났을 때 웃으면서 했던 말 기억나요? ‘사실대로 말할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 아주 환하게 웃으면서 나한테 그랬다니까.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날 ‘검거했다’고 진술했다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아! 법정에 들어가니까 검사, 판사가 나한테 질문을 하는데 묻는 대로 ‘예, 아니요!’만 대답하게 하더라고요. 그러니 사실대로 말할 틈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진술이 되었나 보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기도 모르게 커피를 들이키며 박성은 씨에게 물었다.


“그런데 얼마나 감옥에 사셨소?”

“내가 북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혐의로 ‘20년’이 넘게 감옥살이를 했어요.”

“뭐요? 20년?”

“내가 23살에 감옥을 들어가서 나오니까 43살이더라고요.”

“아이고, 고생 많으셨네. 고생하셨어. 엄청나게 억울하게 고생하셨네.”

“그 고생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요.”

“나 때문에 고생 많으셨네.”


“에이, 무슨 말씀을, 그게 왜 최형 때문이에요? 보안대 놈들이 그렇게 한 거지.”

말없이 당시 ‘69년도 박은성 씨의 판결문을 읽어보던 최 모씨가 말했다.


“북한으로 탈출하려는 사람이 왜 초소에 와서 노크를 했겠어요. 이거 다 거짓말이지. 우리 초소까지 오는데 무슨 검문소나 철책 같은 게 없어서 길을 잃고 온다고 해도 아무런 제지 안 받고 그냥 올 수 있거든요.

내가 확실하게 말하는데 이 사람을 검거한 것이 아니고 체포한 것도 아니에요.

자기 발로 들어온 사람인 것 확실해요. 그건 내가 확실히 증언해 줄 수 있어요.”


최 모 씨는 박은성 씨, 그의 억울함에 대해 당시의 사실대로 쾌히 확인서를 작성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이 필요하면 어디라도 가서 증언을 서 줄 테니, 걱정 말고 꼭 한(恨)을 풀라고

위로까지 해주었다.


이날 최 모 씨와의 만남은 지금까지 재심을 위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박은성 씨의

재심 재판을 위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북한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박은성 씨를 ‘검거’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면

‘판결문상의 기초범죄사실’이 성립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박은성 씨는 ‘2월 15일’까지 추가 증거를 제출해야 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추가 제출된 증거에 따라

재판부는 원심 재판의 문제점을 살펴 재심개시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한편 최 모 씨는 자기로 인해 박은성 씨가 결과적으로 자신의 증언에 의해 억울하게 ‘적으로의 도주자’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잘못된 재판에 대하여 그의 억울함을 밝혀줄 ‘재심(再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실제로 그는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끝까지 협조하였고 잘 도와주었다.

박은성 씨의 지난날에 대해 너무나 힘들었던 이야기를 직접 듣고서 그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했으며,

그에 따른 인간적인 사과도 하였다.


무엇보다 박은성 씨의 억울함을 밝혀 주기 위해 당시의 최 모 일병, 지금의 최 모 씨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적극 협조하였다.

다음은 최 모 씨가 직접 작성한 사건 진술서이다.


< 최 ○○ 진술서 >


저는 1969년 00사단에서 근무한 최○입니다. 당시 저는 일병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박은성 씨가 겪은 억울한 일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그날의 진실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제가 근무했던 초소는 비무장지대로 근무 들어가는 군인들의 통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박은성 씨가 근무하고 있었다고 하는 1군 100포대에서 제가 근무하고 있는 00사단 초소 사이에는 목책, 철책이 없어서 깜깜한 밤에는 방향을 찾기 어려워 저도 낯선 길에서는 길을 헤맬 정도였습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1969.5.4) 새벽 근무시간에 내가 근무하고 있는 초소를 누가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보니 군인 하나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디 소속이라고 했던 기억은 나는 것 같아요.


박은성 씨가 보여주는 판결문을 보니 제가 박은성 씨를 발견했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고

박은성 씨가 제가 근무하던 초소를 먼저 발견해서 문을 두드린 후 들어와서 제가 문을 열어준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제가 박은성 씨를 검거하거나 체포한 것이 아니라 박은성 씨를 만나 같이 내무반으로 안내해 준 것입니다.


그곳에서 선임들에게 경위를 간단히 설명하고 박은성 씨는 내무반에 앉아있게 하였습니다. 앉아있을 때 결박하거나 체포하지 않고 자유롭게 앉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저는 근무를 위해 다시 나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보안대에 누가 연락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있다가 15사단 보안대에 조사를 받으러 갔던 기억은 납니다. 그 당시에 보안대 수사받을 때 제가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보안대 수사관이 물어보면 ‘예, 아니요’ 하고 단답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군대라는 것이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라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것이고 수사관이 말하는 대로 말해야 하는 분위기였던 기억은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서울에 있는 필동, 법정에 갔던 기억도 납니다. 무슨 진술을 구체적으로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예, 아니요’ 대답만 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박은성 씨를 제가 검거한 것이 아니라

먼저 박은성 씨가 초소 문을 두드려서 알게 되고, 제가 박은성 씨를 내무반으로 안내해 준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최○○ (무인) 2019 년 0 월 0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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