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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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부 재심(再審)의 긴 여정

by 청목

3. 훈련소 동기생 ‘문 모’의 만남


다음은 재판부의 재심 신청에 대한 항고결정인용(재심개시결정)을 다시 살펴보았다. 항고심 결정문에 따르면, 박은성 씨를 구금한 장소는 구치소나 영창이 아닌 내무반이었다.


강제수사의 하나인 ‘구금(拘禁)’이란 원칙적으로 피의자를 구치소, 유치장 등 미결 수용실에 구금하는 강제처분을 의미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내무반 같은 곳에 감금한 행위는 적법한 구금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박은성 씨를 제삼자인 훈련소 동기와 함께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잠을 자도록 하고, 화장실에도 그 상태로 다녀오도록 하였던 점도 지적했다. 수갑과 같은 계구(戒具)는 수형자가 도주, 폭행, 소요 또는 자살의 우려가 있을 때에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군행형법 제12조 제1항)하고 있다. 결국 재판부는 박은성 씨에게 가해진 구금 행위와 수갑 채우기 등의 행위는 불법감금이나 가혹행위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즉 보안대의 불법 수사로 인해 수집된 증거는 *‘임의성 없는 상태’에서 수집된 증거라는 것이다. 따라서 재심 재판에서 검찰은 범죄사실의 진위에 앞서 범죄사실의 토대가 된 증거가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검찰은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보안대 수사관 등의 증언을 통해 이러한 불법 구금, 가혹행위가 왜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위법한 수사 과정에 피해를 본 피고인이나 참고인의 증언만을 들으려 하고 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재심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가해와 피해의 의심을 받는 피고인과 참고인의 공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재심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법원이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이번 재심 재판을 통해 보여주길 기대한다.

“춘천 보안대에서 수사받고 있을 당시 훈련동기 문 모씨에 대해 기억나는 게 없으세요?”
“그러게. 기억나는 게 별로 없지만 훈련소에서 같이 훈련받을 때 ‘동인천’ 그쪽 시장 어디에서 ‘방앗간’을 한다는 말만 들었어.”
그래도 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 서로 번호가 앞뒤였고, 고향이 강화도에서 가까운 인천이라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그러면서 동인천에서 방앗간을 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동인천 시장’. ‘방앗간’. ‘문 모씨’, 인터넷으로 동인천 부근 시장을 검색해 보니 ‘송현동 중앙시장’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혹시 시장에 가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송현동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지하철 선로를 따라 길게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역에서 나와 시장 초입에 있는 옷가게에 들렀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래 장사한 가게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옷가게 주인이 물었다.
“혹시 여기 방앗간 하시던 분 중에 ‘문 씨’ 성을 가진 분이 운영하시던 방앗간이 있나 해서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아 ‘문 모’씨가 하던 방앗간을 찾나 보네, 근데 거긴 왜? 벌써 없어졌는데?”

하는 것이었다. ‘아! 그래도 일단 찾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앗간은 주인이 이미 바뀌어 다른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방앗간을 했던 문 모씨의 연락처는 거래처였던 까닭에 알고 있었다.

박은성 씨가 문 모씨와 군대동기였다며 연락처를 부탁했다. 확인해 보고 그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박은성 씨는 문 모씨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는 보안대에서 만났던 사실에 대해서 그에게 진술하기를 꺼려했다. 결국 거기서 의미 있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때 옆에 같이 있던 변 기자가 직접 나서 전화해 보기로 했다. 전화를 받은 그는 한참을 망설이고 주저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던 그는 결국 이런 말을 했다.
“훈련소 퇴소 후 통신부대 부대원 중 10여 명이 보안부대로 파견되었고, 어느 날 수송부에 있던 선임이 저에게 찾아와 제 동기가 잡혀 왔다는 겁니다. 그 선임이 알려주어 식당에서 박 병장을 만나 봤어요. 그리고 보안부대에서 박 병장과 저 단둘이 잠을 자도록 했어요. 한 3일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잠을 잘 때 꼭 수갑을 채워 잠을 재웠습니다. 잠을 잘 때 나눴던 대화는 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박 병장에게 조사 잘 받으라고 말했던 것 정도였어요.

‘박 병장이 저에게 억울하다’고 말했다는데, 저는 사실 그런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는 고문을 받는 것은 직접 목격하지 못했고, 선임이 왜 박 병장과 같이 잠을 재웠는지 그 이유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 병장과 함께 3일 이상 수갑을 찬 채 잠을 잤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를 통해 적어도 3일간 불법구금 된 상태에서 강압적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서 ‘박 병장과 같이 3일 이상 수갑을 찬 채 잠을 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적어도 ‘3일간 불법구금 된 상태에서 강압적 수사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훈련동기 ‘문 모’씨는 수갑을 채워, 최소한 3일 밤을 보안대 내무반에서 같이 잠을 재웠다는 증언을 했다. 그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서도 그와 같은 취지의 증언을 해주었다.


박 은성 씨 본인 증언에 따르면 당시 물수건으로 문 모씨가 고문으로 다친 상처 부위를 닦아주기도 했고, 그들 보안대 조사반에서 수갑을 채워 3일 동안이나 같이 지내도록 한 것은 조사반에서 문 모씨에게 ‘그들의 지시 사항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 지시 사항은 ‘북으로 탈주하려고 했다’는 것을 인정해라! 그러면 5∼6개월 정도 영창살이 하면 될 것인데, 네가 끝까지 그들의 요구, ‘탈주하려고 했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고문받다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조사반, 그들이 박 은성 씨를 협박하며 조사할 때 했던 말이었다. 그들은 훈련 동기 문 모씨, 친구를 이용하여 3일 동안 같이 수갑을 채우고 잠을 재우며 잘 설득해 보라고 했던 것이다.


훈련 동기 문 모씨는 고맙게도 그때 ‘수갑을 채워 3일 동안 내무반에서 잠을 재웠다는 것’을 사실대로 증언해 주었다. 그들이 ‘법적 구치소’가 아닌 임의 장소 내무반에서 조사했다는 것을 증언해 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눈으로 목격한 것’, 당시 박성은의 고문으로 인한 몸 상태, 귀로 들은 것, 조사반에서 그에게 ‘지시한 말’, ‘박은성 씨와의 대화 내용에 대해, 그는 그저 안부만 물었다고 말했다. 조사반에서 지시하여 자기가 직접 이야기한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지금도 박은성 씨는 훈련 동기인 문 모와 나눈 이야기를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인으로 나온 그는 자기가 눈으로 본 것, 자기가 말한 것, 자기가 들은 것을 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함구했다.


그는 고문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고, 왜 선임이 박 병장과 잠을 재웠는지 그 이유도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사람에게는 각자 ‘인간적 양심’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언제고 누구에게나 다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기는 때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문모' 씨로부터 ‘박 병장과 함께 3일 이상 수갑을 찬 채 잠을 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적어도 ‘3일간 불법구금 된 상태에서 강압적 수사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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