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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부> 재심(再審)의 긴 여정

by 청목

4. 동료 수감자 ‘이○우’의 증언


다음은 박은성 병장, 그가 군사 법정에서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입소했을 때 그를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동료 수감자 ‘이○우’가 있었다. 그가 지켜본 당시 박은성 병장의 모습을 증언함으로써 위와 같은 그들이 얼마나 무참하게 폭력을 가했으며 인간으로서 견뎌내기조차 힘든 고문을 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이○우’ 진술서 >


저는 ‘이○우’라고 합니다. 1969년도 ‘박은성’이 적진도주 사건으로 수사받고 있던 당시 남한산성에 있었던 육군교도소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제가 박은성을 옆에서 보고 들은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저 역시 1968년도에 적진도주 미수사건으로 입건되어 재판 과정에 역시 남한산성에 있는 육군교도소에 이감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보다 몇 달 먼저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그때 저 역시 복부에 총상으로 인해 큰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온 지 몇 달 지나서 박은성 병장이 들어왔습니다.


그와 같은 방에서 생활하였는데 무릎을 많이 다쳤다며 왼쪽 무릎을 절고 다녔습니다. 왜 그렇게 다리를 저느냐고 하니,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많이 구타를 당해서 그렇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자기는 적진도주를 의도한 적이 없고, 자살을 하려다가 길을 잃었는데 보안대에서 북한으로 탈출하려고 했다고 조작을 해서 억울하다고 했지만 보안대 수사관들은 그를 계속 구타를 했다는 겁니다.


육군교도소에서 박은성은 어딜 나가거나 화장실을 갈 때는 구부정하게 다리를 절며 다니고, 나와서 세면장에서 씻을 때 언뜻언뜻 몸을 보면 멍 자국이나 구타자국이 그때까지 남아 있던 것을 봤었습니다. 당시 육군교도소에서 뭔가 치료를 해준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일반 교도소로 이감되어 갈 때까지 계속 그렇게 다리를 절고 다녔습니다. 박성은하고 저하고 3~4개월 정도 같이 일했습니다.


나중에 대전교도소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보일러실에서 일을 했고, 그는 목공조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그는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소자들이 하는 말이,

“박성은이 무릎이 깨져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군교도소에서 봤던 그의 몸 여러 곳의 상처와 멍 자국에 특히 무릎 상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안대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상의 진술은 모두 사실입니다.


2019년 0월 00일 작성자 이○우 (서명 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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