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부 재심再審의 긴 여정
2. 후배 한 모의 만남
그는 강화도에 있는 후배 '한 모'를 곧바로 찾아갔다. 당시 '한 모'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어 투석치료를 해야 했다. 읍내의 찻집으로 가 한모를 만났다. 그는 고향 후배 한모에게 그때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힘들게 말을 꺼냈다.
“저 사실, 그 기억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 일을 잊고 살려고 무척 노력하며 살았어요. 왜 이제 와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지 모르겠네요. 조용히 잊고 살아요. 제발.”
그는 아예, 그 일에 대해서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몸서리를 치게 두려워했다. 아마도, 당시 조사관들은,
‘너, 죽을 때까지 여기서 있었던 일을 어디서고 다시 이야기했다가는 온전치 못할 줄 알아!’ 하고 당시 보안대조사관이 함구하라는 위협 때문에 말을 못 할 수 있겠고, 당시에 받았던 시달림이나 고통을 또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로 인해 박 은성 씨가 ‘20년이 넘게 감옥살이’하게 했고, 더구나 고향 선, 후배인 그가 이렇게 찾아와 그때의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도,
“난 그 얘기만 들으면 치가 떨려요. 아유. 그 일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그 지긋지긋한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 다시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그만 잊어버리고 말아요.” 하고 말했다.
그는 기억하기를 아예 거부했다. 박 은성 씨는 그런 그를 달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를 괴롭히기 위한 것도 아니라, 그때의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결국 그때의 과거를 겨우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루는 집에 있는데 헌병들이 찾아왔어요. 그러면서 그냥 잡아가더라고. 처음에는 강화에 있는 헌병대로 데려갔다가 인천 신포동에 있는 보안대로 끌고 갔어요. 거기서 일주일 조사를 받았어요. 그러고는 또 헌병대 수사실로 끌려갔어요. 헌병대 수사실, 그 지하실에 들어가니까 이 새끼들이 뭐라 그러냐면,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며 괴롭히는데 아휴…….”
그곳에서 그가 추궁받았던 내용은 박 은성에게 ‘북한의 이야기를 전했느냐’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그가 인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구타를 당했다.
그는 일주일 정도 그렇게 시달리다가 결국 그들이 시키는 대로 진술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위와 같이 고향의 선후배사이인 '한 모'는 결국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진술한 내용을 하나의 증거로 채택던 것이다. 그 증거 자료는, 판결문 제1 항,
1. 피고인이 군대 입대하기 전인 1965년경 피고인의 주거지인 경기 강화군 양서면 인화리 거주, '한모'로부터 북괴 지역이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