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부> 맹자님, 인간이 善합니까?
9. 그들이 하라는 대로 했지요
그들, 보안대의 조사가 얼마나 치밀하고 집요한가.
여기 그의 판결문 내용은 딱 한 줄로 되어있다. 그 내용은 바로,
‘고향 후배 한모’로부터 북괴 지역이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한모’로부터 북괴 지역이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박병장이 들었다는 것을 ‘사실’로 만들어야 했다.
보안대 초등 수사 때, 박병장의 본적과 관련. 신원조회를 통해 연관 조사된 것으로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당시 강화도에서 어업 활동을 하던 상당수의 배가 북쪽 영해로 휩쓸려 들어간 적이 있었다.’는 정보를 일단 확보했다.
그다음 보안대 조사관은 박병장이 위에 적시된 대로 북한에 관련한 이야기를 누구한테든 들은 적이 있다’고 하는 그 증거, 누군가 박병장에게 ‘북한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그 증거를 박병장 앞에 들이대며,
“네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어. 이미 ‘북한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한 증거가 여기 이렇게 다 있어.”하고 제시할 증거가 필요했던 것이다. 보안대 조사반 그들의 힘이 얼마나 막강하며 얼마나 집요한가? 그것은 박병장이 월북하려 했다는 ‘동기 부여’로서 꼭 필요한 사항이었다.
그가 20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다음, 동네 어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특히 ‘59년 사라호 태풍’ 때, 납북되었던 분들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박병장으로 인해 오모, 고모, 박모 씨 등, 당시 동네 어른들이, ‘1969년 5월 당시 갑자기 보안사로 불려 가서 고초를 겪었다’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분들은 ‘59년 사라호 태풍 때, 직접 납북된 경험이 있던 사람들로 일단 모두 불려 갔다. ‘1959년 사라호 태풍 사건’이면 당시로서도 이미 1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거의 잊혀 있을 그 일, 당시 태풍으로 조업하다 납북되었던 일이 무슨 좋은 일이라고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이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수사를 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해서든 그러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북한을 찬양하거나 북한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당시 보고, 듣고, 겪은 그곳 북한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지 않았는지, 한 사람씩 불러다가 확인 조사를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이미 ‘20년’도 더 지난 일이었는데도 그 어르신들은, 박 병장과 관련은 없는지 조사를 받기 위해 불려 갔던 일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자네 때문에 우리가 보안대로 불려 가 조사를 받고 고초를 당했다네.”하고 털어놓은 것이다. 직접 보안대로 한 사람, 한 사람씩 따로 불러 심문 확인하였다. 물론 어른들은 실제로 그런 사실이 없었을뿐더러 박병장을 만나 이야기 나눈 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 조사를 벌였지만 수사와 관련하여 얻은 것이 없었다.
어른들은 박병장을 최근 만난 일조차 없었다고 진술하였고 결국 모두 곧바로 풀려났다고 한다.
그 가운데 박 병장 나이 또래의 비교적 젊은 ‘한모’가 있었고, 그는 당시 작은 아버지의 배를 타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어린 시절부터 배에서 밥도 짓고 허드렛일을 도왔던 것이다.
그리고 작은 아버지와 같이 ‘59년 사라호 태풍’ 때 납북되어 북한에 다녀온 사실을 바로 파악하였다.
당시 북한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틀림없이 비슷한 나이 또래인 박병장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몰아갔다. 그가 명절 때라든지 고향에서 박병장과 만나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북한 관련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을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한모’, 바로 그를 지목했던 것이다.
여기는 당시, 인천 신포동 보안대 수사반, 그들은 한모로부터 그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고향 집에서 더구나 지병이 있어 쉬고 있던 그를 갑자기 강화도에 파견되어 있던 헌병대에 연락, 지프차가 두 대나 출동하여 그를 연행하여 왔다.
그는 당시 무슨 일로 자기가 연행되어 가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인천 신포동 보안대로 연행되어 온 것이다. 그들 둘이 서로 동네의 집안 친척에 선후배 사이니 가까운 친구사이로 여겼던 것일까?
한모가 비록 어린 시절이긴 하지만 그때 겪었던 북한 관련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다’라는 가정하에 보안사 조사반은 한모, 그를 불법으로 연행, 구속하고 그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회유와 고문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지 진술’을 강요하였던 것이다.
박병장에 대해 그들이 작성한 기소문에 따라 작성되었을 판결문에,
<피고인이 군에 입대하기 전인 1965년경 피고인의 거주지인 경기 강화군 양서면 인화리 거주, ‘한모’로부터 북괴 지역이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다.> 고 적었다.
당시 보안대에서 박병장을 조사 심문할 때, 바로 ‘한모’가 결국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진술한 내용을 박병장의 코앞에 들이대며 추궁했다.
여기서 오로지 국방의 의무에 충실하고자 했던 한 젊은이를 그들은 얼마나 집요하게 ‘적으로의 도주자’로 몰아가고 있는지 지켜보자. 이제 그들 조사반은 박병장을 앞에 세워 놓고 심문하기를,
"너, 고향 친구 ‘박모’한테서 북한 이야기를 들었지?”
“아니오. 그를 만난 일도 없습니다.”
“한모가 너를 만났다는 증거, 네게 무슨 이야기를 했다는 진술 내용이 여기 다 있어.”
“아니오. 저는 만난 일이 없어요.”
“바른대로 말해. 북한이 어떻다고 하더냐? 살기 좋다고 하더냐?”하고 추궁하였다. 박병장이 만난 일도 없고 무엇을 들은 일도 없다고 하자,
“야, 이 새끼야. 북한에서 쌀밥을 줬다든지, 보리밥을 줬다든지, 소고깃국을 줬다든지, 시래깃국을 줬다든지,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 것 아냐?”하고 막무가내로 몰아세웠다.
그는 한모를 그렇게 만난 일도, 사실 어쩌다 동네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이니 만났다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해본 일도, 들어본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더구나 한모가 고문에 못 이겨 작성된 거짓 진술서를 그의 눈앞에 들이대며,
“네가 아무리 안 했다고 해도 소용없어. 여기 이미 ‘한모가 너에게 이야기했다고 진술했거든! 네가 월북하려고 했던 동기, 그 증거가 여기 이렇게 엄연히 있어!”
그와 같이 신원조회를 통해 고향 강화도까지 찾아가 그들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처음부터 박병장, 그를 ‘북으로의 도주자’로 몰아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거짓과 폭력으로 위협하며, ‘북으로 도주’라고 그들이 그렇게 작성한 조서에 박병장이 ‘무인(拇印)’을 찍을 것을 강요했다.
이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내용이 그대로 그의 판결문에 나와 있다.
<피고인이 군에 입대하기 전인 1965년경 피고인의 거주지인 경기 강화군 양서면 인화리 거주 ‘한모’로부터 북괴 지역이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