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 희망 일깨우기
2. 푸른 보리밭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는 주벽 바깥쪽에 목욕탕 시설이 있었다.
어쩌다 목욕을 시켜 줄 양이면 주벽에 딸린 쪽문으로 나와 맨발로 줄을 세워 목욕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쪽문을 나서면 바로 시야가 활짝 열리면서 바깥은 벌써 봄이었고, 푸른 보리밭이 무연히 펼쳐 저 있었다.
그때 바로 등 뒤를 따르던 당시 '젊은 사형수'가 갑자기 선생의 허리를 껴안면서,
"우중위 님, 나 진짜 살고 싶어요!" 하고 울먹였다.
한 치 앞, 언제 사형집행이 단행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담밖에 펼쳐진
'푸른 보리밭'은 바로 강한 '생명'에 대한 절절함이었다.
선생이 무기수로 '20년 20일'이라는 긴 고난의 세월 앞에 우리는 그저 숫자로서의 객관적 인식을 갖고 있을 뿐이다. '복역'이라는 실체를 내가 겪어 본일이 아니라서 그 절절하고 처절함이 어떠했는지는 감히 말할 수는 없다.
처음 1968년,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군복무 중 갑자기 연행되어 구속, 취조, 재판, 언도의 전 과정은 어느 것 하나 충격이 아닌 것이 없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남산 지하실에서 취조할 때 전기 고문으로 쓰러졌다가 간신히 정신이 들었을 때, 취조관이 의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은 전기 고문으로 쓰러졌으니 '의료처치를 요청하려나 보다' 생각했으나 놀랍게도
'아침에 우리 집 아이 감기약을 부탁했는데 그걸 퇴근하기 전에 자기 책상 위에 갖다 놓으라'는 전화였다고 한다.
'남의 아들의 전기 고문과 자기 딸의 감기약' 그 극적인 대비는 너무나 슬픈 것이었다고 했다.
그것은 기본적 인간에 대한 실망이었고 권력의 오만함과 잔혹함에 있어 최소한의 믿음마저 포기하게 했던
절망이 나날이었다고 했다.
더구나 뒤에 알게 된 것은 그 '감기약'이 짜인 각본에 따라 스스로를 냉혹한 인간으로 연출함으로써
'피의자'를 몸서리치게 하는 '수사 기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절망을 넘어 정치권력 그 자체에 대한
소름 끼치는 공포였다고 술회했다.
듣기를 준엄한 군법회의에서 군법무관이 최종 언도를 내릴 때, 피고인으로 피고석에 서 있던 선생은
상임 법무관의 언도가 발음되어 입 밖으로 나오고, 선생의 귀로 듣고 인식하기 이전에 그 법무관의 입모양을 주시했다.
먼저 가로로 길게 벌어지면 그것은 '사-형(死刑)!'을 발음하기 위한 사(死)의 입모양이고, 입술 모양이 가운데로 모아지면서 앞으로 내밀면 '무-기(無期)로, 무(無) 자를 발음하기 위한 입모양으로 미리 알 수 있었다.
당시 '생(生)과 사(死)'의 기로에 서서 그 입 모양의 지켜보고 있던 27살의 젊은 청년으로서의 선생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그때의 상황이 절박했으면 수 십 년 지나고도 그때의 상황을 그토록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그렇게 1심 판결이어 2심 고등군법회의에서 다시 '사형' 선고가 떨어졌을 때 그 순간 모든 생각이 정지되었다고 했다.
그와 같은 순간적 정지 상태애서 서서히 떠오른 것 중의 하나가 '청구회' 어린이들과의 약속이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5시 장충 체육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모습이 떠올랐고 당연히 연락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하루에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 휴지에 또박또박 적어 나갔다.
선생은 '청구회' 어린이들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면서 잠시나마 그때의 추억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강한 생명력의 푸른 보리밭을 대하는 듯 그 글을 적는 순간만큼은 행복했다고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