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의 힘

사랑의 힘

< 제1 부 > 희망 일깨우기

by 청목


1. 감옥에서 의형제를 맺다


당시 박은성 병장은 1969년 6월 30일,

제2군단 보통군법회의에서 ‘적진 도주 미수’라는 죄목으로 ‘무기징역’ 형, 선고를 받는다.

당시 그는 자신에게 선고된 '무기징역(無期懲役)’이라는 의미조차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억울함을 절차에 따라 항소도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처음 그가 갇혀 있던 곳은 제21헌병 중대 제2야전 구치소였다.


1969년 7월 21일이었다. 반세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곳 구치소 헌병대 경비병 의자 위에 작은 흑백텔레비전이 걸려있었고, 바로 그날 TV 화면에서 ‘아폴로 11호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중계되었다.

같은 지구 위, 어느 나라에서는 ‘달나라에 인류의 발자국’을 남기는 새로운 역사를 이룩하고 있을 때,

이곳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에서는 국방의 의무를 위해 성실하게 군 복무하던 한 청년을, 그리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더 없는 효자였던 그를 '적진으로의 도주자’로 몰아 ‘사형(死刑)’을 구형했고, 결국 ‘적진 도주 미수자’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그가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1969년 7월 말, 그곳 헌병대 구치소에서 두렵고 떨리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로 이감되어 온다.


이곳은 어제까지 함께 생활하던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사형’이 집행되어 떠나는 곧,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그런 곳이었다. 악착같이 스스로 잘 버티어 살아내지 않으면 영혼마저 잃는 곳이었다.

‘무기징역!’ 이제 언제 석방된다는 기약조차 없는 감옥살이가 시작되었다. 더구나 앞서 5월 처음 연행되면서부터 7월까지 두 달이 넘도록 사정없는 구타와 고문에 시달렸고, 당시 왼쪽 무릎은 크게 다쳐 절룩거렸다.


더구나,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제8동에는 소위 ‘사상범'들만 모여 있는 곳이었다.

특히 제8호실은 사형수와 무기수만 수용된 특수 감방이었다. 여기서 처음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것은 신입자, 박 병장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다. 때로 한 사람의 만남이 그 사람의 인생을 새롭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마치 고기잡이 어부 베드로가 갈릴리 앞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나 사람을 구하는 제자가 되는 역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말이다.


바로 이곳에서 박 병장은 1969년 1월,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던 '우 선생님'을 처음 만난다.

선생은 이미 6개월 앞서 이곳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와 있었다.

하얗게 눈이 쌓여 있던 당시 너무나 춥고 어려웠던 혹한의 겨울을 선생은 혼자서 견뎌내야 했다.

어쩌면 선생은 마치 박 병장을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렇게 첫 만남이 바로 이곳, 같은 감방에서 운명처럼 이루어졌다.

당시 선생은 햇빛이나 파란 하늘조차 올려다볼 수 없는 지하 독방에서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박 병장, 역시 바로 얼마 전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듯 이곳에까지 오게 되었고, 선생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박 병장에게 있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한다. 박 병장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그때에 바로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좋은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 인간의 삶 속에서 서로의 관계 맺음 그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다. 일찍이 선생은 “먼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 나의 삶과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희망의 기약조차 없는 캄캄한 어둠 속, 그곳이 비록 감옥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서로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 혼자서는 견뎌내기 어려운 일도 서로에게 격려와 힘이 되어 준다면 어떤 일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 더구나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만났을 때,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박 병장이 여기까지 오게 된 자신의 이야기, 그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속 시원히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오히려 선생이 어쩌면 더 큰 아픔을 겪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누구보다 억울하고 아픈 마음을 헤아려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우선은 둘 다 모두 군인의 신분이었고, 선생은 ‘중위’, 박 병장은 ‘병장’, 그래서 호칭하기를 ‘우 중위님!’ 할 것이고, 그대로 ‘박 병장!’하면 되었다.

“우 중위님!”

“박 병장!”


아마 밤이 늦도록, 아니 밤을 새워서라도 선생에게 박 병장은 지금까지 겪어왔던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은 박병장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잘 들어주었다. 실제로 선생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주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선생은 눈물겨운 박 병장의 이야기를 밤을 새워가며 듣고, 어떤 억울한 일을 있었는지, 박 병장이 어떤 사람인지 차차로 알게 되었다. 선생은 그를 더 가까이서 더 따뜻한 마음과 눈으로 지켜보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선생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박 병장! 오늘부터 우리가 서로 ‘의형제(義兄弟)’를 맺기로 하자! 내가 연장자이고, 박 병장 네가 아우이니, 내가 ‘형님’이고, 너는 ‘아우’다. 어떠냐?”

선생의 그 말을 듣고 박 병장으로서는 그저 놀랍고, 참으로 고맙게 여겨졌다.

“신 중위님. 저는 그저 고맙습니다.”

“아! 그래. 박 병장, 너도 좋게 생각한다는 말이지?”

“저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신 중위님!”

“자! 그러면 이제부터 ‘신 중위님!’ 하지 말고 나를 ‘형님!’이라 불러라! 나는 ‘아우야!’하고 부르겠다.”

“아! 형님!”

“그래, 아우야!” 하며 자연스레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몇 번이나,

“형님!”

“아우야!”

결국 박 병장은 감격한 나머지 왈칵, 눈물이 나오는가 싶더니 아예, 선생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그저 끅-끅- 대며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옥 안에서 두 사람은 이제 남이 아닌 의형제, 특히 박 병장에게 있어 어둡고 살벌한 이곳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선생을 통해 한줄기 밝은 희망의 불빛을 보게 된 것이다.

박 병장에게 있어 선생은 아주 절망적인 순간, 그의 마음 가운데 밝은 희망의 불빛이자,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삶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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