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랑의 힘

사랑의 힘

< 제 1 부 > 희망 일깨우기

by 청목

3. 청구회 추억

한편, 이곳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6개월 앞서, 한겨울 1월 입소한 '우 선생'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선생은 박 병장과는 달리 당시, '사형(死刑)' 언도를 받은 상태였다.

항소에 대한 그 절박함은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본인의 마음 추스르는 일만으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형’과 ‘무기징역’ 그것은 바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

선생은 처음 보통 군법회의에 이어, 1969년 7월 23일에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도 사형이 언도되었다.

당시 선생은 실제로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처음엔 지은 죄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에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1심(구형-언도-확정)에 이어, 또다시 2심에까지 모두 여섯 차례나 ‘사형!’ 소리를 똑같이 들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구회 추억> 이야기는 1966년 이른 봄철에 「서오릉」 나들이에서 마주쳤던 아이들과의 이야기였다.

여기서 ‘춘궁기(春窮期)의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당시 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런 아이들이었다.

지금이야 물론 중학교 과정도 모두 의무 교육과정이 되어 그럴 일이 없겠으나 당시에는 졸업생의 상당수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여기 등장하는 ‘청구회’ 아이들이야말로 바로 그런 아이들이었다.

선생은 어쩌면 앞날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들과의 첫 만남은 봄철의 잔디 위로 진달래처럼 맑은 향기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했다. 선생은 이른 봄철 민들레 씨앗처럼 가벼운 마음의 해후였고, 그날 헤어지면서 아이들은 진달래 한 묶음을 수줍은 듯 건네주는 작은 손길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생님’ 일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이어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토요일에 만나 우선 모임의 이름을 아이들 모교의 이름을 따와 <청구회>라 지었다. 저희들끼리 모여 달리기 체육활동, 마을청소 등 봉사활동을 자발적으로 하였다.

그리고 선생은 아이들과 함께 주로 하는 것은 바로 책을 읽는 ‘독서활동’이었다. 선생은 매월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 ‘청구회 도서’로 기증하였으며, 아이들도 책을 모아 <청구문고>라고 이름 짓고 함께 책 읽는 독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와 같이 1968년 7월 25일, 선생은 ‘통혁당 사건’과 연루되어 구속되기 전까지 청구회 아이들과 만남은 그렇게 잘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너무나 갑자기 구속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어떤 연락도 취할 수 없었다.


여기 ‘삶’과 ‘죽음’의 기로, 가장 절박한 그 순간에 다름 아닌 ‘청구회 이야기’를 떠올렸고, 하루에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 휴지 위에 볼펜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밤중에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청구회 추억'을 또박또박 적고 있는 그동안만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청구회 추억’은 '사형'이라는 절망에서 위로의 작은 창문이었다.

"글을 적는 동안만큼은 옥방의 침통한 어둠으로부터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오는 구원의 시간이었다'라고 적었다.


당시 상급학교에 가지 못한 그 아이들의 앞날에 대해 나름 고민도 하였다. 그렇다고 선생이 도맡아서 학비를 지원해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선생은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희망을 일깨우고자’ 했다.

선생은 항상,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그와 같이 선생에게 있어 감옥에 들어오기 전부터 '청구회' 아이들과의 ‘희망 일깨우기’가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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