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 희망 일깨우기
4. 희망 일깨우기
선생은 ‘희망 일깨우기’를 위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어떤 시도를 하였을까?
아침 세면을 마치고 식사시간 전이나, 식사를 마친 후, 선생은 잠깐의 시간이라도 짬을 내었다. 추운 겨울날, 박 병장과 그 동료들에게 삼삼오오 모이게 하였다.
“감옥 안이라 해도 젊을 때 뭐든 배워야 한다고, 그 나이에 영어 공부하겠다고 모이라고 하면, ‘감옥 속에서 영어 배워 어디다 쓰게요?’ 하고 말대꾸할 수 있지요. 그런데 당시 형님이 그렇게 가르쳐주시는 것에 그저 감사했어요.
'영어 공부하게 모여라!'하고 형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저 달려갔어요. 그리고 형님은 참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어요.”
훗날 박은성 씨는 감옥에서 그렇게 애써 가르쳐 주시던 선생을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눈물 적시며 회고했다.
선생의 또 다른 ‘희망 일깨우기’는 바로 독서하기 <이동문고>였다. 당시 교도소 내부 규정은 꽤 엄격했다.
우선 한 사람이 ‘세 권’ 이상은 소지할 수 없도록 했고 일정한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거기다 책에 ‘열독 허가증’이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선생이 운영하는 <이동문고>는 수십 권을 모아 활용되고 있었다. 선생은 한 권도 직접 책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당시 수감생활에서 읽고 싶은 책을 개별적으로 구입해서 읽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선생의 <이동문고>는 인기가 매우 높았다. 그렇게 선생은 책을 꾸준히 모았다. 선생한테 책을 빌려 달라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안과에서 가끔 선생의 방을 수검하고 무슨 수상한 책이 없는지 수시로 조사했다, 하지만 선생이 소지하고 있는 책은 모두 독자들에게 직접 대출되었기 때문에 지적받을 일이 없었다. 개별적으로 각 작업장에 자연스럽게 깔려 있었다. 어느 공장의 누가 그 책을 다 보았으면 그다음은 그 책을 누구에게 준다는 그런 <이동문고>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와 같은 <이동문고> 네트워크는 인간적 신뢰에서 이루어졌다.
선생이 구속되기 전 이미 <청구회> 아이들과 함께했던 활동이 바로 ‘독서’였다. 당시에도 서로 책을 모아 물리적 형체는 없었지만 이동도서관 <청구문고>가 있었고 잘 활용되었다.
이곳 감옥에서도 책을 읽고자 하는 수감자들, 특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본인들이 책을 읽고자 하는 생각만 있으면 얼마든지 꾸준하게 독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독서, 책을 읽는다는 것, 일단 무료한 시간을 유익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는 것, 적어도 선생의 <이동문고>에는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히고, 또한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이 모여 있었다. 선생의 이러한 독서 활동은 수감생활을 하는 이곳 젊은이들에게 바로 ‘희망 일깨우기’를 위한 일환이었다.
또한 선생은 스스로 ‘떡신자’ 임을 자처했다. 어쩌면 때 묻은 그 모습이 인간적 친근감으로 다가오고 그러한 친근감이 곧, 서로의 신뢰감으로 성숙하게 했다. 이러한 신뢰감이 그 춥고 혹독했던 감옥살이를 견디게 하는 따뜻함이었고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는 관계. 어쩌면 '최고의 인간관계'라고 선생은 말했다.
선생은 어느 특정한 종교에 귀의(歸依)하거나 종교 관련 단체에 매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본인 스스로 ‘떡 신자’라고 지칭하며 어떤 종교 활동이나 적극 동참하였다. 매년 연말연시, 성탄절, 석가 탄신일 등, 사찰이면 사찰, 교회면 교회, 가톨릭 성당이면 성당 등에서 위문을 나와 각종 종교 집회 활동과 함께 떡이나 빵 등, 먹을거리를 위문품으로 가져왔다. 그러한 종교 집회가 있을 때마다 선생은 요령껏 참석했다. 각종 종교 단체의 행사에 참여하려면 사전에 이름이 그 명단에 등재가 되어 있어야 했다. 선생은 어느 종교 단체에도 가입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명단에 이름이 있을 리 없었다.
담당 교도관이 명단에 없다고 처음부터 참가를 막으면,
“나는 무기수이니 앞으로 남은 기간이 많아, 어느 종교든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꼭 이곳저곳을 모두 다녀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생은 그 점에 대해서 ‘자기 변화’의 추구이며 ‘떡 신자’라는 이미지가 그곳 수감자들과의 '인간적 신뢰 형성'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이동문고>를 통한 '독서활동'에서보다 더 인간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일이라고 선생은 생각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