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봄날~!
어쩌다 입원 수술하라는 진단을 받고 한 며칠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사이 어디 긴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은 그저 편안했다.
입원 후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병원이 꽤 큰 규모인지라
옥상에는 환우들을 위한 가볍게 걷기 운동이나 산책도 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침 그날은 주말 아침이었다. 다른 일정 없이 한가하여 바람도 쏘일 겸 옥상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산책할 수 있는 통로 양쪽으로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우선 화사한
분홍색 꽃잔디가 폭신한 카펫처럼 깔려 있었고, 까만 바위사이 하얀 돌단풍,
그리고 영화 '지바고'에서 보았던 노란 수선화가 '라라'의 얼굴처럼 거기 있었고,
아직 피지 않았지만 작약이 금방 터질 듯 꽃봉오리가 맺어 있었고, 붉은 명자나무,
또 하얀 명자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닌데도 생각보다 여러 가지 많은 꽃들이 참 많이
피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는데, 높은 건물 옥상 위에서 모진 한파를 다 이겨내고,
제 각각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김없이 제때에 피어났다는 것, 그 모습을 바라보다
가만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나이 들고, 여기저기 자꾸 아픈 곳이 생겨 이 좋은 봄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서글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가라앉아 있는 내게, 앞 다투어 활짝 핀 봄꽃들이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를 봐요! 지난겨울 유난히도 추웠지만, 그런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
따뜻한 봄을 맞아 모두 이렇게 때가 되니 제각각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을 피웠잖아요.'
작은 꽃들이 그렇게 속삭여주는 듯했다. 어쩌면 크고 작은 꽃 하나하나가 어떤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게도 하여 하나하나 천천히 눈여겨보기로 했다.
몸이야 세월 지나고 나이 들면 아픈 곳이 생기기 마련이고 때로 병원 신세도 지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새롭게 피어나는 저 봄꽃들처럼, '그래, 이 봄에는 또 어떤 새로운 마음
으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볼까?' 나름 그런 다짐을 하게 하였다.
'아니, 저 하얀 꽃은 바로 라일락 꽃이잖아! 오늘 아침에라도 피었나?'
거기 한쪽에 하얀 라일락 꽃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라일락 꽃은 대개 연보랏빛인데?
저 하얀 라일락 꽃의 향기로 내 가슴을 가득 채워 보리라!
아름다운 라일락 꽃도 꽃이지만 그 향기의 그윽함은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가만히 뒤돌아 그 옛날 어느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미 많은 세월이 그렇게 까마득히 지나가버리기도 했다.
아마 처음 아내를 만나고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우연히 사진첩에선가 앳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은 바로 라일락 피는
오월이었던 듯, 집안 마당의 뜰이었고, 거기 연보랏빛 라일락 꽃나무 아래,
라일락 꽃보다 더 활짝 웃는 모습으로 사진 속에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직접 하지 않았지만 '라일락 사진 속의 저 모습처럼
언제나 밝고 환하게 웃을 수 있게 해야지! 적어도 울리지는 말아야지!',
나름 마음속으로 그런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 꿈은 그저 야무졌다.
우리는 결혼하고 멀리 휴전선이 가까운 전방 J읍에서 처음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퇴근하고 밤늦게 동료들과 어울려 거나하게 술 한잔 잘하고 집에
느지막해서 집에 돌아왔다.
새댁인 어린(?) 아내는 남쪽 멀리 떨어진 친정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
아니면 노총각 구제해 준다고 만난 남편을 잘못 만났나 여겨서였는지 그저 혼자서
그렇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을 그렇게 시작했다 해도 지금껏 가만히 나를 돌아보면 앳된 그 라일락 그 사진 속의
얼굴 모습처럼 언제 한 번이라도 진정 그렇게 환하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게 해 보았던가?
이미 지나간 세월은 어쩔 수 없다 해도 한 겨울 모진 추위도 다 이겨내고 아름답게 핀
저 봄꽃들과 그리고 향기 그윽한 라일락 모습처럼 언젠가 밝고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