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재천교수의 <숙론>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 '숙론'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여럿이 함께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과정'
이라고 했다.
또한 지은이는 '토론'을 넘어 우리 사회가 '숙론'의 사회가 될 수 있기를 강조했다.
지난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전문' 낭독에 이어
다음과 같이 주문을 선언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 결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는 후퇴하지 않도록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세운,
중대한 전환점이자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도도한 흐름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역사적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결정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혼자서 내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당시 헌법재판관 전원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고, 철저한 민주적 절차와 열띤 토론,
즉 충분한 숙론(熟論)을 거친 다음, 재판관 모두의 의견을 수용하여 단 ‘한 번의 표결’로
'만장일치'의 결정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당시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 양 극단으로 국론이 격렬히 대립하며,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처해 있었다.
실제로 앞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 결정'에 반발하여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폭력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통령 파면 결정'은 자칫,
국가 헌정질서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헌법재판관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끌었고, 또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역사에 기록될 훌륭한 결정문을
만들어 냈다.
특히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국민 대다수가 그 결정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깊이
공감하게 했으며, 헌법질서를 회복시킨 명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
여기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삶과 그 이력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가 자라던 시절은 대체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웠고 특히
대학 진학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당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문 재판관은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실제로 중학교 졸업앨범 사진 속에 본인의 얼굴은 맞는데, 교복은 선배에게 물려받아
많이 낡은 까닭에 잠시 친구의 옷을 빌려 명찰에는 친구 이름이 그대로 있었다.
그와 같이 학업 성적은 뛰어났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가정 형편이 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시는 '김장하 선생을 만나게 된다.
김장하 선생은 문형배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학비를 지원받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사법시험 대비
공부를 열심히 하여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문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을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까요?”
이에 김장하 선생은 담담히 말씀하셨다.
“그 은혜를 나한테 갚으려 하지 말고, 이 사회를 위해서 갚아라~!”
문 재판관은 그 말씀을 가슴에 새겼고, 이후 판결을 내리는 순간마다 김장하 선생의
그 한마디를 떠올리며 실천해 왔다고 한다.
헌법 재판관으로서의 그의 소신은 바로 김장하 선생의 가르침, 그 인생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김장하 선생의 뒷받침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의
정의를 올바로 세우게 하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착에 크게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