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의미

by 청목

성당이 바라보이는 곳, 이웃에 나이 지긋하신 분이 계셨다.

그리고 어쩌다 우연히 나를 만나면,

“산에 가면 멧돼지도 잡겠소!”하곤 했다.

그분보다야 당연히 아직은 젊고, 나름 체력관리를 잘(?)하고 있는 터라 듣기에 기분도 좋고,

은근히 건강에 대한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어느 해, 겨울 휴가를 맞아 연수 형식으로 ‘강원도 오크 벨리 스키강좌’ 안내 공문이 왔다며 가까운 지인이

함께 가자고 권했다. 나로서는 딱히 몸이 매여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행 삼아 동행하기로 했다.

다만 추운 날씨에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스키 훈련’이라니 솔직히 썩 내키지는 않았다.

사람이 자기가 좋아서 즐겨할 때, 더 신명도 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야말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한창 젊을 때도 아니고 로보캅 구두 같은 무거운 스키 화에 내 키보다 큰 스키를 장착하고 눈 위에서 훈련에 임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훈련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3 일째 이어지자 솔직히 그만 연수를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온 것도 아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막 날까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키 교육을 겨우

마쳤다. 집에 도착했을 때 몸이 많이 피곤하고 지쳐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온 그날부터 한쪽 어깨가 결리고 으슬으슬 몸살기가 있었다. 거기다 다음날 가까운 이들과 산행 약속이 있어 할 수 없이 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날씨가 유난히 추웠다. 그리 어려운 산행 길은 아니었으나 집에 돌아왔을 때, 몹시 피곤하고 전날보다 몸살기가 더 심했다. 바로 감기 몸살 약이라도 처방받아야 했으나 주말이다 보니 병원도 약국도 일찍 문이 닫혀 가지 못했다. 더구나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왼쪽 가슴 부위에 두드러기처럼 붉은 반점이 여럿 돋아나 있었다. 산행하고 나서 삼겹살 안주에 술도 한잔한 까닭에 음식 알레르기로 인한 두드러기쯤으로 여겼다. 통증을 동반한 것도 아니어서 전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에야 병원을 찾았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전혀 대수롭지 않게 ‘대상포진(帶狀疱疹)’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거기다 ‘죽을병’은 아니라고도 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대상포진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듯, 아주 가볍게 진찰을 끝내고 일주일분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더구나 나 역시, ‘대상포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약을 제때에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는다’고 뒤돌아보면 ‘가래로도 막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포진’ 말 그대로 왼쪽 심장이 있는 가슴을 시작으로 마치 붉은색 띠를 두르듯 온몸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처음 두드러기처럼 돋은 곳에서 작은 돌기가 생겼다.

거기 물집이 생기듯 일어난 돌기에 그저 살짝 건드리거나 무언가 스치듯 닿기만 해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 아픔은 온몸을 몸서리치게 했다.

더구나 그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계속되었다.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통증클리닉을 찾아갔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통증의 정도가 1에서 10까지 있다면 본인이 느끼기에 어느 정도인가요?”하고 물었다.

나는 ‘10 이상’이라고 대답했고 의사 선생님은 약을 처방해 주었다. 하지만 별로 차도는 없었다.

할 수 없이 대상포진에 대한 통증 치료를 전문적으로 한다는 수원의 모 병원까지 찾아가

진료도 받았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지만 씻은 듯이 낫지는 않았다.

마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은 바늘들이 그것도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왼쪽 가슴을 찌르듯

아프게 했다.


대상포진, 개인의 건강이나 초반의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 따라 빠르고 쉽게 치유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두고 보면 그 후유증이 거의 일 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고통이 빨리 끝날 수 있기를 몹시 기다렸다. 차츰 정도의 차이, 횟수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 어떤 큰 잘못을 한 까닭에 이렇게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올 무렵, 이제 그 통증에 대한 자각증세를 거의 느끼지 않을 만큼 회복되었다.

가까운 산에 올랐다. 밤새 하얀 눈이 살짝 내려 있었다. 그런데 거기 하얀 눈 위에 맨발의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다섯 개의 발가락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발자국은 산 위에서부터 산 아래 오솔길을 따라 계속 이어져 있었다.

따뜻한 계절, 건강을 위해 맨발로 걷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봄이라도 눈이 하얗게 내려

있는데 맨 발자국이라니, 때로 눈 위에 일부러 얼굴도 찍어 보고, 맨발로 한두 번쯤 발자국을 남길 수도 있다.

그렇게 이어진 자그마한 발자국 크기로 보아 분명 여인의 발자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 길을 따라 연이어 발자국을 남겼을 때는 아예 발이 시리다 못해 아프게 저려 왔을 터이다.

어쩌면 그 발, 자신의 몸으로 느끼는 시리고, 아픈 통증으로 말미암아 정작 자기의 가슴속에 어떤 상처나 아픔을 잊기 위한 안타까운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가만히 돌이켜 생각하기를 ‘대상포진’으로 인하여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그토록 오랫동안 나로 하여금 겪게

한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아픔을 겪게 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어느 누군가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주었고 그 아픔이 어떠했는가를 나 자신으로 하여금 절실히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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